에뜨랑제(Etranger)의 월드투어

세상구경하며 찍은 사진과 일정 소개

죽기 전에 지구끝까지

골동과 차의 세계/옛 도자기를 매만지며

찻잔, 차사발, 막사발

Etranger nam 2011. 6. 22. 02:20

 

 

 

시간이 많아서인지, 쓸데없는 상념이 많아서인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낸다.

어디선가 우리 찻잔을 막사발이라고 부르면 안된다라는 글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차사발이라는 말도 사용하여 한번 생각을 해 보았다.

 

사발(鉢)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우리네 삶에서 밥을 담는 그릇을 말한다. 즉 밥사발의 준발이다. 물론 사용하기에 따라서 죽도 담을 수 있고 감자도 담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밥 즉 주식을 담는 그릇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다. 이에 비하여 대접은 국을 담는 그릇이다. 사발이 비교적 높고 오목한데 비하여 대접은 상대적으로 낮고 넓은 법이다. 숫가락으로 국물 떠먹기가 쉽도록 해서이다. 사발과 대접은 식생활과 관련있으며 그래서 주방 즉 부얶의 세간살이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기물들이고 그래서 그 갯수도 비교적 많을 수 밖에 없다.

 

막사발이란 무엇인가. 사발로서 양반들이나 귀족들이 쓰도록 귀하게 만든 상품이 아니라 무지렁이 서민들이 부담없이 쓸 수 있도록 저렴하게 만든 기물이라는 의미와 함께 대충 아무 먹거리나 다 담아 먹을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옛 우리 무지렁이 백성들이 어디 사발 대접 구분하여 쓸 만큼 물자가 풍부했겠는가. 그러니 대충 사용한 것이다. 여기에서 국사발이라는 말도 파생되었다고 본다. 밥사발이라도 국을 담으면 국사발 아니던가? 막걸리를 담으면 막걸리 사발이고 죽을 담으면 죽사발이겠지만...

 

 

이 막사발이 일본의 차문화를 만나 다완이라는 점잖은 이름을 얻었다. 누구는 일본에서 다완으로 대접 받는 사발이 결코 막사발이 아니라 이미 우리나라에서 차를 마시거나 절에서 제사를 지내는 도구로 만들어 진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의 상류사에서는 이미 고품격 백자를 만들어 즐기던 터라,  일본에서 다완으로 사용되는 막사발들이 차를 위한 도구 또는 제사를 위한 기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렇다고 당시 살기 바빴던  서민들이 한가롭게 차를 즐기거나 제사를 위해 별도의 이런 기물을 만들었다고 보기도 쉽지않은 일이다. 결국 일본의 차문화를 이끌어온 다완은 우리네 사발이 분명하며 그것도 양반사회의 정제된 사발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에서 막사발이라고 불러 별로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차사발이라는 단어가 나타나 상당히 당혹스러위진다. 차를 마시는 사발? 다완을 우리말로 풀어보니 차사발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서 그런 모양인데, 사실 다완이라는 말도 말차를 마시도록 제작된 비교적 큰 잔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완(碗)은 잔과 사발 대접 따위를 모두 일컷는 일반적 용어로서 반드시 사발로 번역될 필요는 없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차는 사발떼기로 배를 채우도록 마시는 것이 아니다. 차는 고도의 문화적 향취를 내포한 채 그야말로 향과 색 그리고 맛을 음미하며즐기는 기호품이다. 그래서 차류를 마시는 그릇을 구별하여 잔(盞)이라고 하며 영어로도 사발을 의미하는 bowl과 구별하여 cup이라는 별도의 단어가 있다. 지금도 커피나 인삼차를 밥사발에 타서 마시는 행위를 결코 자연스럽다고 보지 않는다. 커피사발이란 말이 얼마나 어색한가? 다만 말차를 마시려면 한번에 마시는 양이 비교적 많아지게 되는터라 조금 큰 잔이 필요했을 것이고 특히 말차를 돌려가며 마시는 일본의 차문화에서 대안으로 찾아낸 것이 바로 우리 막사발이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차사발이라는 말을 참 어색하게 생각한다. 차는 사발로 마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는 어디까지나 잔으로 마시는 것이며 그 것이 다소 크더라도 찻잔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 차는 배를 채우는 용품이 아니기 때문에 부얶의 기물인 사발에 마시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차는 사랑방이나 안방에서 고고하게 즐기는 기호품이라 집집마다 다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정위치 역시 부얶이 아니라 안방이며 사랑채였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옛 도자에서 찻잔은 그 양이 상대적으로 많지 아니하여 사발이나 대접과 구별될 수 밖에 없다. (고미술 세계에서 그 기물의 용도가 원래 무엇이었으며 또 어느 장소에서 주로 사용하였는가 하는 것은 가치 평가의 중요한 척도가 된다)

 

물론 오늘날에 와서 우리 옛 사발이나 대접에 차를 마실 수도 있고 귀하게 안방으로 모셔놓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때부터 그 그릇은 이미 밥사발이 아니라 차를마시는 그릇이 되고 결국 찻잔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시대의 흐름과 사람의 선택에 따라 용도와 의미가 바뀌어진 것이다. 결국 언제 어디서나 차를 마시는 데 쓰이는 그릇은 찻잔일 뿐 그 용도가 말차잔이든 녹찻잔이든 좀 크던 작던 결코 차사발로 불리우는 것은 무척 어색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