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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희망이 넘치는 나라

Etranger nam 2011. 6. 26. 03:00

새로운 희망이 넘치는 나라

남 일 재(동서대학교 교수)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가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기억을 되찾는 치료를 하면 시력이 손상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는 기억 되살리는 치료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애써서 과거를 기억해내는 일보다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할 것이며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하는 미래를 추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꾸며낸 것이지만 미래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가끔 집안 정리를 하다가 해묵은 일기장이나 앨범을 발견하고는 한참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지난 일을 회상해 보기도 합니다. 아름답고 즐거웠던 추억도 많지만 생각하기조차 부끄러운 일도 무척이나 많은 것을 느끼곤 합니다. 시간을 되돌려 돌아가서 다 바로 잡아두고 싶은 충동을 진하게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과거는 결코 돌아갈 수도 없는 곳이며 과거의 일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묻고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많은 상념들 속에서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을 다시 뒤죽박죽으로 떠올려 오늘과 내일의 일을 할 시간을 다 잡아먹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젊음이란 무엇일까요? 나이에 관계없이 돌아볼 과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가 더 많은 상태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젊은이는 과거에 발목을 잡히지 않고 앞으로 달음질치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간혹 과거에 발목이 잡혀 오늘을 놓치거나 미래의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내내 침통한 얼굴로 부끄러운 과거를 어떻게 고치고 가리울까 생각하다가 새로운 기회를 다 놓쳐버리곤 하지요. 과거에 집착하며 지내는 한 미래는 한발자국도 다가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재신임을 받지 못하고 정권을 넘겨주게 된 이유 중 하나도 과거의 사슬에 발목을 잡혀서 미래를 열어갈 희망을 주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권위주의 정부 아래에서 있었던 과거사의 진상을 밝히는 일에 너무 힘을 쏟다보니 정작 미래에 대한 희망을 소홀히 한 측면이 있는 것이지요.

해가 바뀌면 으레 희망을 노래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게 됩니다. 한국의 2008년은 여느 해와는 다르게 찾아왔습니다. 건국 60주년이자 올림픽 개최 20주년이며 또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는 첫 해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그동안 미래를 향해 뛰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한 것이 노무현 정부의 과라고 한다면, 새로 들어설 정부는 무엇보다 먼저 희망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나간 정부의 잘못을 들추어 시비하기 보다는 용기와 희망으로 가득 찬 지도자와 함께 열심히 일하며 땀 흘리는 국민들의 모습을 보여 줄 때 사회적 무기력증이 치유될 것입니다. 우선순위 와 경중(輕重)을 가리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태안반도에 쏟아진 기름 재앙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태안반도에 무엇보다 급한 것은 해안에 밀려온 기름을 치우는 일이라는 적극적이면서도 희망적인 생각이 수십만의 자원봉사자를 불러 보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만약 왜 선박이 충돌하였는지, 또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일부터 출발했다면 결코 그러한 자원봉사자를 모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희망 넘치는 분위기와 열심히 뛸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 주면 엄청난 일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게 한국이고 한국국민입니다. 1960년대 초 국민소득 100달러도 안 되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던 한국이 이뤄낸 기적적인 경제성과도 그러한 결과였습니다. IMF 외환위기 때 온 국민이 금 모으기에 자발적으로 동참한 일이나, 태안반도에 불과 3주만에 5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달려가는 모습 속에서 위대한 국민을 보게됩니다. 이제 새로운 출발이며 새로운 희망이 넘치는 나라 '다시 뛰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야할 것 입니다.

 

2008년 1월 부산교통방송 라디오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