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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일시론] 한국사회 쓰레기 청소에 시효는 없다

Etranger nam 2014. 5. 7. 01:00

 

[부일시론] 한국사회, 쓰레기 청소에 시효는 없다
 
2014-05-06 [10:58:23] | 최종수정: 2014-05-06 [10:58:23]
 

남일재 / 동서대 교수·정치학박사 

 

 

지난 3주간 매일 울었다. 침몰해 가는 배 안에서도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방송을 믿으면서 침착했던 착한 아이들. 이 꽃보다 더 예쁘고 보석보다 귀한 아이들을 물속에서 고통스럽게 숨지게 한 한국 사회의 무기력함이 너무도 원망스럽고 부끄럽다.

이 사건 전까지, 요즘 아이들을 디지털 기기에만 빠져 가상공간을 헤매며 현실감 없는 정신세계를 가진 자기중심적 N세대라고 폄하했었다. 그러나 이 N세대 아이들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구명조끼를 양보하는 등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서로 돕고 격려하고 있었다. 오히려 어른인 선생님의 안부를 먼저 걱정하고 부모님을 안심시키는 대견스러움도 보였다. 승객을 책임지지 않고 먼저 탈출했다는 선장과 선원들, 그리고 전혀 위기 대처 능력을 못 보여 준 정부 당국과 한국사회를 더욱 부끄럽게 하는 모습이다.

쓰레기들이 아이들을 바다로 밀어 넣어

지금 이 시간에도 실종자 40명이 바닷속에 있다. 그들의 구조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쁜 기상과 세찬 조류 그리고 어둡고 깊은 수심이 이들의 구조를 어렵게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많은 부유물과 쓰레기 더미들이 구조단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침몰한 선내의 구조 통로를 꽉 틀어막고 있는 쓰레기 더미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 다양한 쓰레기 더미들이 이 착한 아이들을 바다로 밀어 넣었고 이제는 구조마저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면서 '겹겹이 쌓여 온 잘못된 적폐(積弊)'라고 언급한 것처럼 공직 사회는 이미 쓰레기 더미로 그 정상적 기능이 마비된 상태이다. 어디 해운 분야뿐이랴. 원전, 문화재, 철도, 에너지, 금융, 교육 등 곳곳에 산재해 있는 쓰레기 더미들은 언제든 또다시 대형 참사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된 폭탄들이다. '공직철밥통' '관피아'로 불리며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무력화시키는 비정상적 카르텔. 그들만의 폐쇄적 리그가 청산되지 않는다면, 우주보다 더 귀한 우리 아이들의 생명과 미래를 더 이상 이 국가에 맡길 수가 없다.

이런 쓰레기 더미들이 공직 사회에만 있겠는가? 이미 국민들이 포기하다시피 한 정치권 쓰레기들의 수준은 공직 사회보다 몇 수준 더 높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노력보다 형식적 논리만 따지는 무책임한 사회구조적 쓰레기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에만 몰두하는 천민 자본주의 쓰레기들, 신(神)의 이름으로 기만 축재하는 종교적 쓰레기들, 매사에 대충 적당주의로 일관하며 작은 이익에만 집착하는 황폐한 정신적 쓰레기들, 이런 쓰레기들이 한국 사회를 꽉 틀어막고 있는 한 우리는 선진된 사회로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가 없다.

이 쓰레기 더미의 청소에 시효는 결코 있을 수 없다. 대통령은 '국가 개조'를 다짐했다. 국가 개조 작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틀어막히고 고장난 사회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한다. 과거를 끝까지 추적해서라도 잘못의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하는 것이다.

잘못된 사회적 시스템의 물결이 어쩌면 구조의 손길을 가로막는 맹골수도의 거센 조류보다 더 거칠고 세찰 수도 있다. 지난날 정권들 모두 강력한 개혁과 사회적 정상화를 시도했지만 잘못된 관행의 거센 물결 앞에서 대부분 실패했던 사실을 국민들은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하였다. 이번만은 달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둡고 차거운 맹골수도에서 속절없이 희생된 꽃보다 귀한 아이들의 원혼을 달래 줄 어떤 명분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각성만이 사회 구원의 지름길

비극적 상황 앞에서 온 나라가 분노하고 국민 모두가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사회를 냄비 근성이라고 질타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번에도 시간이 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냄비처럼 식어 버릴까 두렵다. 영원히 이 사건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사회적 쓰레기를 말끔하게 치워야 한다는 의식이 식어서는 안 된다.

침몰 직전까지 그 자리에 있으라는 방송을 굳게 믿었던 아이들. 그들은 사회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시민사회가 답해야 한다. 그리고 대오 각성해야 한다. 그 길만이 세월호의 비극을 또 하나의 사건으로 남기지 않고 침몰해가는 한국 사회를 구원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