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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일시론] 이 땅의 정치인들만 모르는 세 가지

Etranger nam 2014. 9. 25. 15:44

[부일시론] 이 땅의 정치인들만 모르는 세 가지

남일재 / 동서대학교 교수, 정치학 박사 

 
세월호 참사 5개월, 한국 정치는 일대 혼돈에 빠져 버렸다. 304명의 고귀한 생명들이 수장되는 현장을 눈물로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그 희생을 딛고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였다. 대통령이 나서서 국가 개조를 천명하였고, 정치권의 모든 정파들도 세월호 이후는 정말 달라져야 한다고 뜻을 모으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정치 자체가 침몰하고 있는 또 하나의 비극적 현장을 보고 말았다. 눈물을 흘리면서 이번만큼은 다르겠지 했던 국민의 기대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세월호 침몰 5개월, 달라진 것 하나 없어

정치 쇼로 날려버린 세월호 국정조사 90일, 세월호 특별법에 묶여 단 한 건의 민생 법안 처리도 못하고 있는 식물 국회, 아무런 타협도 협상도 이끌어 내지 못하는 무능한 여야, 어떤 성의 있는 자세도 보이지 않는 정부 여당, 이 와중에 탈당 소동과 반노·비노·친노를 따지는 야당의 자중지란, 그나마 실낱같은 협상의 여지마저 없애버린 대통령의 야박한 입장 발표. 이런 정치인들의 한심한 행태를 지켜보면서 국민 노릇 하기란 정말 어렵다.

우리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으로 구성되는 선출직 공무원과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전문직 공무원, 그리고 정당의 당료들을 포괄하여 정치인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소위 정치엘리트로서 민주주의 사회를 이끌어 가는 가장 상위 계층으로 분류되어, 타 분야의 엘리트들이 최종 목표로 하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국민들은 정치인들에게 드높은 도덕성과 깊이 있는 책임감, 냉철한 판단력과 포용력 있는 리더십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 땅의 정치인들 행태를 보노라면 실망을 넘어 절망의 상태를 느낀다. 국민들은 이제 정치인에게 도덕성이나 책임감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기본이라도 지켜 달라는 소박한 마음뿐이다. 국민들은 다 아는데 유독 이 땅의 정치인들만 모르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아니, 정치인만 되면 다 잊어버리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첫째, 민주정치의 본질이 대화와 설득, 타협과 협상, 그리고 양보라는 것을 이 땅의 정치인들만 모른다.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타협과 양보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 타협이 불가할 때는 다수결의 원리로 결정한다는 것은 어린 초등학생들도 다 알고 있는 기초적 상식이지만 정치인들만 알지 못한다.

둘째, 민주정치는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정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이 땅의 정치인들만 모른다. 이른바 당론이라고 일컬어지는 집단적 의사결정과 지도부의 눈치나 살피는 패거리 정치, 모든 관심이 하향식 공천에만 몰려 있는 정당들이 매우 비민주적이라는 것을 국민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유독 정치인들만 모른다.

셋째, 이 땅의 정치인 수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정치인들만 모른다. 국회의원 300명과 지방선거 선출 정치인을 합치면 약 4천500여 명에 이른다. 그렇다 보니 막말과 기행을 일삼고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비인격적 정치인들도 매우 많다. 무능·무례하고 사회적 기여도가 별로 없는 정치인들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것을 국민들은 다 알고 있는데 정치인들만 모른다.

다음 선거라도 제대로 생각하라

정치가(Statesman)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만 정치인(Politician)은 다음 선거만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다음 선거라도 제대로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지금처럼 무능과 구태, 그리고 절망감 가득한 모습을 보여 주지만은 않을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되면 정치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정치를 하라고 맡긴 국민의 책임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지만, 이제라도 국민들이 나서서 정치인들을 제대로 고쳐 놓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조국이 참으로 큰일이다.

대한민국이 민주정치 국가로서 계속 존재해 가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차세대에게 제대로 된 정치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대화와 설득, 타협과 양보, 배려와 관용이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들을 정치권과 정치인들에게서 배울 수 없는 사회라면, 조국을 책임질 미래의 정치가는 결코 양성될 수 없다. 지속적이며 진정한 국가 개조의 키는 민주정치의 기본적 원리를 제대로 배운 미래 정치가들의 손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