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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일시론] 광복절,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Etranger nam 2014. 8. 20. 01:57

[부일시론] 광복절,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남일재 동서대학교 교수 정치학 박사
2014-08-19 [10:45:18] | 수정시간: 2014-08-19 [10:45:18] | 26면

 

지난 5일간 한국 사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열광하였다. 방한 중 교황이 보여준 말과 행동은 가톨릭 신자를 넘어 온 국민의 마음을 흔들었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교황의 태도에서 한국 국민들은 그동안 만나 보지 못했던 지도자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들르는 곳마다 환경미화원, 시설관리원 등을 만나 일일이 선물을 나누었고, 고위직 정치인과의 의례적인 오찬은 사양했다. 소형차와 KTX를 이용하였고, 고통 받는 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통해 한국 사회에 큰 숙제를 안겼다. 이런 교황의 자세는 아무리 높게 평가하여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69주년 광복절은 너무도 중요한 시점

그러나 문제는 교황의 방한 기간 중에 광복절이 있었다는 데 있다. 지난 8·15 광복절, 주요 언론과 인터넷 뉴스들은 교황의 방문 기사로 가득찼고, 광복절 관련 보도는 형식적으로 스쳐지나가는 듯 취급되고 있었다. 심지어 주요 포털 사이트에는 광복절과 관련한 기사가 하나도 떠 있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검색창을 이용하여 광복절을 쳐 보고, 주요 신문 매체들의 사설과 기획 보도를 찾아보았지만 대통령의 8·15 경축사 보도 이외에 사설이나 심층 진단으로 광복절의 의미를 다루는 기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거리의 시민들에게도 올해 광복절은 교황이 가톨릭 종교 행사를 주관하는 날이며, 또 황금 연휴가 시작되는 날일 뿐 민족이 새기고 다져야 할 역사적 의미가 있는 날로 인식하는 분위기는 적었다. 교황의 방문과 그 행적은 분명히 세계적 관심사이며 중요한 이슈이긴 하지만, 광복절 당일마저 광복절의 의미가 언론과 시민들에게서 밀리는 듯하여 안타까웠다.

올해로 69주년을 맞는 광복절은 예년처럼 경축행사 한 번과 기념사 낭독으로 지나쳐 버릴 날이 아니다. 지금의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의 상황은 보통 심각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베의 우경화 정권 이후 한·일 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며 또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이 동북아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면서 이미 한·미·일 동맹에는 작은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지지하고 나섰고, 중국은 태평양 진출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과 경제협력 및 역사 문제를 공조하고 나섰다. 그러면서도 중·일은 영토분쟁, 역사인식 문제 등 난제를 두고서는 서로 득 될 것 없다는 인식 아래 정상회담을 위한 조정작업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의 행보가 맞물리면서 한국의 외교적 처신이 보통 어렵지 않게 되었다. 이런 현실을 두고, 정세분석가들은 한반도 주변정세가 마치 국치를 당하던 구한말을 연상케 한다고도 말한다.

한반도는 군사적 대치 상황이 계속되고 있고, 핵무장한 북한의 행보는 여전히 통제불능이다. 북한은 교황 도착 직전에도 방사포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쏘아 대는 무력시위를 벌여 우리 측을 긴장하게 했다. 그러면서 17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 조화와 조전문을 전달하는 과정에서는 우리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진정한 광복은 분단이 해소되고 통일을 이룰 때 가능하다. 또 이러한 통일의 길을 위해서는 동북아의 평화와 협력체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남북한과 4대 강국이 서로 엇물려 협력관계가 모호한 상태로 지속된다면 통일과 진정한 광복은 그만큼 더 늦어진다. 적어도 광복절에는 이런 상황에 대한 심층적 분석과 대응 전략이 있어야 하고 또 국민적 관심을 모아야 한다. 이런 일을 하는 데 여야가 있을 수 없고 좌우의 끝 모르는 대립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광복절,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신기록 행진을 하고 있는 영화 '명량'의 마지막 장면이 화제다. 명량전투에서 승리한 후, 병사들이 농담하듯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 한 걸 알까 모르겄네?" "모르면 호로새끼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 생각난다.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우리는 과연 어떤 조상으로 기억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