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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역설

Etranger nam 2011. 6. 26. 02:20

우리시대의 역설

‘제프 딕슨’이라는 미국 시인이 인터넷 공간에 쓰기 시작한 <우리시대의 역설>이라는 연작 시가 있습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건믈은 높아졌으나 인격은 더 낮아졌고,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늘었으나 생활은 더 가난해졌고, 더 많이 구매하지만 기쁨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적어졌고, 편리함이 늘어가지만 시간은 더 부족하다.
학력은 높아졌으나 상식은 부족해지고, 지식은 많아졌으나 판단력은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약은 많아졌으나 건강은 더 나빠졌다.

생활비 버는 법은 배웠으나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는 상실되어져 간다.
달에까지 갔다 왔지만 길 건너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고,
세상을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가슴 속의 세게는 잃어버렸다.

자유는 더 늘어났으나 열정은 오히려 줄어들었고,
말은 점점 많아지지만 사랑은 점점 적어진다.
이익은 많이 추구하지만 관계는 더 나빠지고,
평화를 계속 논하지만 전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 시는 이후 많은 네티즌들이 참여하여 계속적으로 연작을 하며 공동 작품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해주는 말들입니다.

무명의 작가가 써놓은 글에 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왜 놀라운 존재인가? 인간들은 어린 시절이 지루하다고 서둘러 어른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한다. 인간들은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다 잃어버리고는 다시 건강을 되찾기 위해 벌어둔 돈을 다 써버린다. 인간들은 미래를 구상하고 염려하느라 현재를 다 놓쳐버리고 결국 현재도 미래도 모두 제제로 살지 못한다.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치열하게 살지만 종국에는 살아본 적이 없는 것처럼 무의미하게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저는 젊은 학생들을 향해 꿈을 크게 하고 비전을 가지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문득 아들이나 학생들의 미래를 염려하고 다그치는 사이, 정작 나 자신의 현재와 오늘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혹 불확실한 미래에 발목이 잡혀 눈앞의 분명한 현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 해야 할 일도 제대로 못한 채 내일 해도 될 일에 염려를 쏟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실 오늘은 매일 만나고 있지만 내일은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을 가벼이 넘기고 막연한 내일을 기대하며 살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다소는 엉뚱하고 황당한 일까지도 미래와 비전이라는 말로 포장시킨 채 되지도 않을 일을 꿈꾸곤 했던 일이 너무도 많았던 것입니다.

미래를 설계하며 비전을 세우기 전에 먼저 현재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먼저 물어야 될 것 같습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다 써버리기 보다는, 오늘 내가 기뻐할 수 있는 해 갈 때 내일 역시 기쁜 생활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비전과 꿈을 가지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매우 성실하게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바라던 것을 다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불완전하며 한계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종교가 필요하고 신을 믿게 되며 기도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인생을 제대로 알고 살기 위해서는 부족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먼저 깨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 겸손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2007년 부산교통방송 라디오칼럼

우리시대의 역설.M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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