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chmaninov, 그 아련한 추억
모처럼 시간을 내어 연극 한편을 보았다. 진한 감동을 기대하며... 나름대로 공을 들인 연출과 혼신의 힘을 다하는 연기, 탄탄한 스토리가 공연 내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막이 내리고 객석에 불이 켜지자 훌훌 털고 일어섰다. 극장밖에는 벌써 찬바람이 불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저녁, 차에 오르자 연극의 감흥은 온데간데없이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대개의 경우 감동과 감흥은 일회성이다. 축구경기를 보며 가슴미어지게 환호하던지, 신문이나 방송을 보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 경우라도 하룻밤 자고나면 대개는 다 사라지고 마는 법이다.
늘 그래왔듯이 습관적으로 카라디오를 틀었다. 무심결에 몇 곡 흘려듣다가 그만 가슴이 탁 막혀왔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선율이 밀려들고 있었다.
크렘린의 종소리라고 했던가? Rachmaninov의 Piano Concerto 2번이었다.
꼭 33년전 늦가을,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갔던 소녀의 부탁으로 서울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악보를 구하던 일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당시로서는 부산에는 졸업 오디션 용 악보를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서울 유학중이던 나에게 부탁을 하였고, 나로서도 낯선 거리 서울에서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은 없었다.
악보를 가슴에 안고 근처 레코드가게에서 복사판 한 장을 구해 전축이 있는 친척집에서 처음 접한 Rachmaninov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1악장의 흩날림에 끌려 10번이나 거푸 들으면서 비로소 음악에 눈을 뜰 수가 있었다. Julius Katchen이 London Symphony와 협연한 1959년판 LP 복사판은 그 후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망실되었고, 후일 거금을 들여 수입 원반을 다시 구하여 지금도 소장중이다. 이 앨범에 빠져 버린 후 거장 루빈시타인이나 밴 클라이번의 연주, 심지어 Rachmaninov 본인의 연주마저도 시큰둥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나는 별로 바쁠 것도 없는 직장 일을 핑계 삼아 Rachmaninov를 점차 멀리하였고, 오래된 오디오는 먼지만 쌓여간 것이 벌써 10여년 된 것 같다.
누구의 연주인지도 모른 채 흐르는 라디오 음악의 멜로디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다. 정말 뭐라고 해야 좋을까?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람, 그 정겹던 얼굴을 마주 한 듯 약간의 흥분을 느낄 지경이었다. 대학시절 이 음악을 소재로 글을 몇 편이나 쓴 적이 있다. 특히 제1악장의 강열하면서도 애절함은 깊은 여운을 남겨 도저히 그냥 일어설 수 없어 몇 줄 글로서 휘갈겨놓곤 했던 것이다.
다음 글은 그 때 휘갈긴 것을 토대로 재구성한 시로서 1976년 학내 문학상 시부분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글이다.
꽃송이 하나가 내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심장을 향해 정조준을 하고, 공격태세를 끝낸 고양이 마냥 도사리고 있었다. 꼼작도 아니하고, 소리도 아니내고, 나의 얼굴만 노리던 꽃송이
어느 비오던 날
찻잔 속으로 녹아 덜어지는 서러운 세상 얘기를 하다, 그만 슬픔을 꽃이라 하고 꽃을 슬픔이라 하여 바람부는 좁은 골목길에서 마구 떠들었더니, 그새 내 꽃송이 비를 맞아 눈물이 글썽글썽 했었다.
- 중략 -
결국 한방 맞고 말았다.
요란한 소리를 타고 핏줄기가 솟아올랐고 꼭 심장을 닮은 꽃잎하나가 쫓아나와선 하늘 높이 뛰어 오르더니 피흘리고 목마른채 눈을 감는 내 육신 곁으로 내려앉아서 실컷 웃어대는 것이었다.
- 拙稿1976, 모놀로그중에서-
당시 나는 쓸데없는 상념에 잘 빠지는 감성적 소년이었고, 그때마다 Rachmaninov를 들으며 스스로를 위안받곤 했었다.
오늘 이 저녁 연극 한편을 소화해 내고 돌아서는 길, 어쩌다 그만 옛 상념 속으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33년 긴 세월 내 곁에 머물며 언제나 친구가 되어 주던 Rachmaninov를 다시 들으면서 이제는 모습조차 아련한 옛 얼굴을 못내 그리워한다.
이건 아 감흥일까 감동일까.
잠들기 전 진한 커피 한잔 뽑아들고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까보다
2005년 부산문화회관 발행 저널 에술에의 초대에 올렸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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