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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장터에서 만난 사람 - 골동품 인생을 꿈꾼다.

Etranger nam 2011. 6. 23. 07:33
문화장터에서 만난 사람 - 골동품 인생을 꿈꾼다.

매주 토요일 오후만 되면 괜스레 집을 나선다. 별 볼것도 살것도 없다고 투덜대면서도 부산 구덕운동장 옆 문화장터로 가보곤 한다.
문화장터의 첫 출발은 고미술품과 민속품 애호가의 저변 확대를 위한 좋은 장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중국 수입물품을 거래하는 사이사이에 우리 민속품 몇점과 헌책 몇권이 나와있는 정도로 변하고 말았다.
아쉬움이 크지만 그래도 그만한 휴식처 마저 마땅찮은 도심에서 답답하게 사는 처지라, 한번씩 들러 전을 펴신 분들과 담소도 하고,차도 나누어 마시며, 사지도 않을 물건 흥정도 해보는 맛이 제법 고만고만한 것이다.

며칠전 평소 교우하고 있는 지인과 만나기로 하고 문화장터에 들어서는데 뜻밖의 분을 만났다. 부산시내 모 대학에서 필자와 동일 전공으로 후학들을 지도하시던 K교수였다. 늘 학회에서 만나 함께 토론하며 교우하던 선배 k교수님은 이미 수년전 정년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별 연락드리지 못하고 있던터라 더욱 반가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K교수님은 나처럼 바람쐬며 놀러 나오신 것이 아니라 아예 한자리 전을 펴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상상 밖이었다. 주로 병풍에서 뜻어낸 듯한 낡은 그림과 책자들을 쭉 펴놓고 웃으시는 품이 제법 어울리는 터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어쩐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먼저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면서 문화장터 사람이 된지 제법 되셨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간 내가 왜 뵙지 못했을까? 그림에 관심이 없던 터라 장터 맨 아랫편에 뚝떨어져 전을 펴시고 가만히 앉아 계신 교수님을 무심히 지나친 듯하였다.아주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에 몸둘바를 몰랐다.
이제 날이 제법 쌀쌀해져서 난전에 앉아 있기가 쉽지 아니한 계절이 되었는데 적지아니한 연세에 어쩌나 걱정이 앞섰지만 그래도 당신의 일에 열심이신 노교수님의 모습이 보기 좋은 것 아니냐고 서로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였다.
정년 퇴임한 교수의 새로운 인생, 나는 그분의 깊은 사연이나 과정을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난전에 앉으신 용기에 새삼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나역시 벌써 지나온 날보다 앞으로 지내야할 날이 적어진 나이가 되었다. 한참 회자되던 제2의 인생에 대한 생각이 밀려왔다.
지금 하던 일을 그만 둔다면 무엇을 할까? 그것도 육체적 힘과 정신적 정열이 식어버린 다음이라면 또 어떨까?

갑자기 골동품과 고물이 떠 올랐다. 골동품과 고물은 오래되어 이미 사용되지 아니하는 물건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그 차이점은 너무나 크다. 고물은 아무도 찾지않아 버림을 받는 신세이지만 골동품은 날이 가고 세월이 더할수록 가치를 더하여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다.
인생 역시 그러리라고 생각된다. 육신을 다 사용하고 정신마저 퇴락해버려 더 이상 아무런 가치를 발하지 못한채 젊은이들의 앞길에 방해나 되는 고물같은 인생이 될 수도 있고, 비록 나이는 들었으나 아직도 사회적 역할을 하면서 날이 갈수록 그 가치를 더하여 비전을 풍기는 골동품같은 인생도 있을 것이다.

나는 골동품 도자기 몇점을 모으며 즐긴다. 그리고 나역시 골동품처럼 변하지 않는 가치를 풍기는 삶을 살고 싶다. 허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나는 골동품이 되고 싶지만 어쩌면 이미 고물로 대접(?)받기 시작한지도 모를 일이다.
문화장터에 용기있게 자리를 트신 K교수를 뒤로 하고 돌아서면서 괜한 상념이 밀려왔다. 어쩌면 몇년 후 나도 집에 모아둔 도자기 몇점 싸들고 K교수님께서 개척해 놓은 옆자리에 앉을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때 나는 고물일까? 골동품일까?



2004.11.04 아츠넷http://www.artsnet.co.kr/ 편고재주인의 열린 사랑방에 올렸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