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라고해야 정말 섭치 몇 점을 인터넷 경매로 몇 점 사 모은 것 밖에 없는 내가 도자기를 소재로 글을 쓴다는 것이 정말 게면쩍다. 허나 기왕 편고재 주인의 허락도 얻은 듯 하고, 정헌철 교수님의 초대도 받은 터라 용기를 내어 본다.
故 허천(許天)선생은 경남 합천 가회 출신의 언론인이셨다. 본명이 허종두이신 그 분은 작고하시는 날까지 국제신문과 부산일보의 논설위원이셨고, 부산지역 문화인 및 지식인 사회의 마당발이자 마지막 기인(奇人)이셨던 분으로 많은 이들이 못내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이분에 대한 추억담은 며칠 밤을 지새워도 다 못할 만큼 많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오늘은 허선생의 수필 한 점을 소개할까 한다.
선생의 수필집에 수록된 글 중에 ‘잡초론’이라는 것이 있다. 세세히 기억은 다 못하지만 대충 내용은 이러하다.
“세상에는 진귀한 풀도 많고 아름다운 꽃도 많아서 아름다운 화분에 담겨 뭇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사실 그것들은 이 세상의 흙을 꽉 움켜쥐고 지켜내지 못한다. 무엇이 세상 흙을 움켜쥐고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고 있는가? 그것은 다름아닌 잡초들이다. 모양새도 신통찮고, 기억될 만한 이름도 없으며 내내 무시당하고 뽑히며 짓밟히는 천덕꾸러기들이지만, 사철 때맞추어 쏴악 솟아올라 온 땅의 흙을 꽈악 걸머쥐고 앉아 있는 이 잡초들이야 말로 바로 지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지켜내는 존재인 것이다. 역사는 누가 지키고 있는가? 공적과 명예가 드높은 분들인가?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과는 비교될 수도 없는 삶을 묵묵히 살아온 무지렁이 민초(民草)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역사를 지켜온 주인 아닌가? 잡초 한포기 한포기가 참 아름답고 귀하게 다가선다.” (지금 수필집 원본을 가지고 있지 못하여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 재현한 글줄이 아무래도 신통찮다.)
섭치 몇 점을 쥐고 잡초론 생각을 하였다. 천년의 세월이 담긴 토기 하나, 우리의 자부심어린 고려청자, 도무지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이 보아도 그 아름다움에 눈이 황홀한 청화백자를 정말 명품으로 만든 힘은 정녕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 자체가 우수하고 아름답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더라도, 어쩌면 깨어지고 터진 채, 덧칠하고 수리된 채로 단 돈 몇 만원에 이리저리 팔려 다니며 나 같은 초보까지 이 세계로 이끌어 준 섭치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 아니었겠는가?
살면서 상을 받거나 칭찬을 들은 기억 별로 없고, 그다지 우수하지도 못해 명문도 아닌 학교를 대충 졸업하였으며, 50여년 살면서 세상에 내 놓을만한 변변한 업적하나 없고, 아내에게서조차 그다지 중요한 존재로 취급받지 못하는 나는 허천선생의 ‘잡초론’을 읽으며 미소를 지어보았고, 이제 섭치 도자기 몇 점을 매만지며 새로운 위로를 얻는다. 나 같이 섭치를 매만지는 누군가 있어야 빛나는 명품을 모으며 감상하는 분들도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섭치를 매만질 때마다 흐뭇하다. 강한 동지애를 느끼는 것이다.
거의 평생을 혼자서 지내며 누구에게도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면서도 한번도 당당함을 잃지 아니하셨고, 많은 가난한 문화인들을 위해 혼자서 동분서주 바쁘게 살다 가신 허천 선생 역시, 단정하지 못한 용모로나, 투박한 말씨로나, 월세 단간방 살림살이로나 참으로 섭치인생을 사셨던 것 같다. 오늘따라 유난히 허 선생이 그립다. 언제 짬 내어 합천 가회 고향 언덕에 잠들어 있는 허 선생께 인사라도 다녀와야겠다.
2004.09.30 아츠넷(http://www.artsnet.co.kr/) 편고재 주인의 열린 사랑방에 올렸던 글
허천 잡초론 원문
잡초론雜草論
허 천
얼마쯤 전이었는가, 어느 초여름인듯 싶은데 畏友 김현옥씨가 경영하는 학교에 갔더니 화단의 한쪽을 꽤 넓게 쪼개어 잡초원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가 들이나 산에서 흔히 보는 풀과 꽃을 한군데 모아서 화단을 만들었더라는 것이다.
잡초니까 그야말로 얽키고 설키어 무성히 자라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이름도 모르는 조그마한 꽃들이 피는듯 마는듯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 김현옥씨라는 분, 기발한 아이디어를 잘 내고 원대한 구상을 잘 하는데 유명한 분이지만 학교화단에 잡초원을 만들어 놓을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신기해서 보고 보고 또 보고 했다.
그의 설명은 대충 이러하였다.
「잡초가 그 모진 힘으로 국토를 싸-ㄱ 덮고 꽈-ㄱ 잡고 있어서 우리 국토가 무너지지도 않고, 떠내려가지도 않고, 또 쪼개지지도 않는 법이야. 어디 국토가 큰 나무, 좋은 꽃만 가지고 되는 줄 알어. 곳곳에 빈틈없이 쩌려있는 이 잡초의 힘이 더 큰거여. 우리아이들이 장차 이 잡초처럼 국토를 싸-ㄱ 덮고, 꽈-ㄱ 잡아서 굳건히 지켜나갈 터이니 어디 두고 보라구…」
솔직히 말해서 전기를 맞은것 같은 느낌이었다. …잡초도 풀이고 꽃이 아닌가. 그래서 심어 본 것이지 뭐. 좀 이채롭고 새로운 감각이 아닌가?… 이런것 쯤으로 풀이가 나올 줄 알았는데 내가 미쳐 생각지도 못한 꿈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말았다.
그는 일상 대화 속에서도 간혹 혼자말처럼 자기의 철학을 중얼거리는 수가 있다. 그럴 때, 그의 이야기는 그곳의 분위기와 더불어 나에게 묘한 충격과 뜻밖의 세계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항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찾고 있구나 하는 그런 느낌을 들게 하기도 한다.
그 얼마쯤 후일 것이다. 내가 자주 대하는 식물학자인 친구 주상우씨에게 이 잡초원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대뜸 「세상에 잡초라는 것은 없어 아무리 보잘것 없고 천한 풀이고, 꽃이라도 다 제 나름대로 이름이 있고, 기능이 있는 거야. 우리가 그것을 눈여겨 보지 않고 그래서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있는것 뿐인거야.」
과연 그렇구나. 역시 그 방면의 전문가는 보는 것, 생각하는 것이 다르구나!
나는 또 하나의 교훈을 얻은 셈이다.
지금까지의 내 인식이란, 잡초는 매우 귀찮은 것, 그리고 매우 모진 것, 그것이 전부이다.
「오뉴월 잡초처럼」이란 말이 있지만 여름철이 되면 그야말로 때도 곳도 없이 멋대로 자라서 사람을 괴롭히기도 하고, 보기에 사납기도 한것이 잡초이다. 특히, 농촌의 사람에 있어서는 잡초는 바로 적이요, 장해물이다. 돈이 들고, 힘이 들며, 잡초와 싸우다가 세월을 보내는 셈이요, 그것에 이겼을 때 얼마간의 수확을 얻는 그런 지경이 아닌가. 들이나 산에도 너무 무성히 자라서 사람이 다니는데 불편을 준다.
좋게 보일 때가 있다고 하면 소나 양을 칠 때 정도가 아닐까.
그런 잡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또는 생각에 따라서는 이렇게 유익하고 유능한 존재인 것이다. 역시 생각은 깊게 가져야 하고 눈은 높게 떠야 하는가 보다.
잡초인 우리민초. 보통사람이요, 그래서 서민이라고 하는 우리 모두는 따지고 보면 다 잡초가 아닌가. 아무렇게나 태어나서 아무곳에서나 뿌리를 내려, 좋은 소리 궂은 소리 들어가면서 끈기 있게 자라고 있다, 바로 잡초의 생태이다.
그러나 우리민초가 국토를 싸-ㄱ 덮고, 꽈-ㄱ 잡아서 무너지지 않고 떠내려가지 않고 찢어지지 않게 지키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나라가 유지되고 있는것이 아닌가. 한주먹 밖에 안되는 그 고상하고 알량한 관상화목이 결코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한주먹은 제들만 잘난 것으로 알고 있다. 제들만 편코 쉽게 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애국을 하기는 커녕, 더러는 남이 해놓은 애국을 앗아가기도 하고 훔쳐먹기도 한다.
그 한주먹을 키우기 위해서 주인은 그렇게 애를 쓰고, 돌보기도 했는데, 어느정도 자랐다 싶으면 제가 오히려 주인 노릇을 하려고 든다. 그러면서도 반성도 없고, 의지도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좋은 꽃, 좋은 나무를 모조리 없앨 수도 없다. 그 꽃과 그 나무도 또한 나름대로의 기능은 갖고 있을 터이니 우린 싫든 좋든 그것에도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잡초는 말이 없다. 오직 생명력이 있고, 인내력이 있을 뿐이다. 잡초는 잡초이기 때문에 그 생명력과 인내력으로 잡초노릇을 단단히 해야하고, 또 할 수 밖에 없다.
이름이 없어도 좋고, 남이 돌보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잡초가 아닌 것도 아니요, 잡초가 아니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잡초는 잡초처럼 살면 된다. 그것이 본분이고 본성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초도 잡초처럼 본분을 지키고 본성을 보이면서, 어제처럼 살고, 오늘처럼 살며 또한 내일도 그렇게 살아가면 족한 것이다.
지금 밖에는 봄비가 소리없이 내리고 있다. 이제 이 비를 맞으면 잡초는 더욱 기를 펴고 힘을 내면서 돋아 오르고 뻗어 나갈 것이다.
비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조용히 학교의 잡초원을 생각하고, 또 그의 설명과 학자의 견해를 되씹고 있다.
아. 나도 잡초인가. 그렇다면 새삼 모진 힘과 끈기로 오늘을 살고 내일을 버텨야지.
(새도덕 99호 1992. 4)
- 허천 수필집 『멀고 먼 길』, 허천선생추모사업회, 세종출판사, 1993.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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