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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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론과 섭치인생 | ||
앞전에 고 허천선생을 그리며 잡초론을 올린적이 있다. 이번에도 역시 허선생을 떠올리며 나의 도자기 모으기를 변하고자 한다. 도자기 수집하는 것을 취미로 한다고 하면서도 가히 감상용으로 내놓을만한 제대로된 명품급 물건하나 가지지 못한 처지를 조금은 아쉬워 하면서도 나름대로 변명아닌 변명을 해볼까 하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로서는 도자기에 대한 기본적 안목이 없으므로 좋은 물건을 고르거나 구매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다음으로 비교적 보기좋고 빛갈 좋고 완전하여 쓸만한 것은 가격이 만만찮아서 월급쟁이로서는 겁이나는 것이 내가 명품에 가까운 물건을 가지지 못한 이유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만만한 것을 찾아 갯수라도 늘리면 토기, 청자, 백자, 사발, 대접, 병, 문방구 등 다양한 품목을 감상할 수 있으리라는 소박한 생각을 앞세워 가격대가 저렴하다고 생각되면 일단 사들이는 전술을 사용하였다.달리 표현하면 무차별 쓸어모으기 수준으로 접근한 것이다. 고 허천선생이 평소 내세우는 지론 가운데 그물론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거의 반평생을 혼자 살아오면서 수발해주거나 이야기를 나눌 여성을 가까이 두지 못한 까닭에, 공적 사적 모임이나, 식사자리, 술자리를 막론하고 다방아가씨, 술집마담과 호스테스, 식당주인, 심지어는 자주 들리는 회사의 여직원 등 여성만 보이면 일단 작업을 시작하는 버릇을 보이곤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일화가 있다. 오래전에 허선생이 부산시내에서 알만한 명사들과 자주 들리던 한정식집(요정급으로 기억됨)에서 도우미로 일하던 아가씨들과 있었던 일인데, 비교적 젊고 인물이 좋은 한 아가씨를 조용히 불러 손에 무엇을 쥐어 주었는데 그것은 허선생의 거처에 관한 주소, 전화번호, 약도 등이 그려진 작은 쪽지였다. 그러고는 슬쩍 흘리기를 "내 자네가 참 좋다. 우리 집에 한번 놀러오게나" 하는 것이 아닌가. 아가씨는 당황하기도 하였지만 곰곰히 생각하니 허선생이 평소 혼자 지내시는 것을 아는지라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동료들이 모였을 때 그 사실을 공개하며 "허선생님이 쓸쓸해 보이는데 한번 놀러갈까?"하고 의견을 구하였다. 순간 동료들은 모두 박장대소하며 주머니에서 꺼내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허선생의 바로 그 쪽지였다. 이 무슨 일인가. 허선생은 그 식당 모든 여성들에게 똑깥은 내용의 쪽지를 다 돌렸던 것이다. 뒷날 허선생에게 물었다. "여성을 사귀려면 한사람을 골라서 집중 작업을 해야지 왜 눈에 보이는 모든 여성들을 대상으로 침만 바르고 다니십니까?" 그랬더니 대답이 아주 걸작이었다. "모르는 소리 말게. 젊고 인물좋고 돈까지 많은 남자들은 마음에 드는 여성을 한명 점찍어놓고 낚시로 잡아채면 대개 성공하기 마련이지만 나처럼 늙고, 돈없고, 키작고 인물까지 시원찮은 사람은 낚시로는 승부를 낼 수가 없는 법이거든. 그래서 그물을 치는 것이야. 촘촘한 그물을 들고 고기 근처에 마구 휘두르다 보면 눈먼 고기라도 하나 안걸리겠나?"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말씀에 함께 웃었지만 상당히 일리있는 이론(?)같았다. 소위 그물론이었다. 그가 보이는 여성마다 작업을 시도하고 접근하는 것은 그물을 치는 포괄적 작업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성공하였는지는 확실한 통계를 내보지 못한 까닭에 알 수는 없지만 참으로 허천 다운 발상이었다. 비교될 지는 모르지만 내가 섭치를 두루 모으는 이유도 상당히 비슷하다. 나의 식견이나 능력으로는 마음에 드는 명품 하나 점찍어 낚시로 거두어드리기란 정말 어렵지 않겠는가? 나역시 값싼 그물하나 들고 대충 대충 거두어들이다 보면 언젠가는 혹 마음에 꼭드는 물건 하나쯤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는 것이다. 아직은 나의 집에 모여든 물건들 중 평생을 곁에 두고 아낄만한 매력있는 물건은 없다. 그러나 고만고만한 것들을 여럿 즐기면서 눈도 점점 밝아질 것이고, 어쩌다 정말 운 좋으면 요행히도 멋진 물건이 그물 속에 따라 들어올 경우도 있겠거니 하는 것이다. 그러고 쳐다보니 섭치들이 나를 향해 도끼눈을 뜨고 항의를 하는 것 같이 느껴지고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 잘 못했다. 비록 점찍어 모셔오지는 못했어도 그물에 쓸려 내곁에 온 후 나에게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게 한 섭치도자기 너희들을 내 어찌 홀대하겠니? 한점 한점 들고 매만지며 닦아 주면서 천하 명품 1점을 그리워 하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 스스로 위로를 삼는다. 오늘 저녁에는 가까이 지내는 섭치 인생들 몇 초대하여 진품 고려청자 잔을 들고 소주라도 나누어야 할까보다. 2004.12.02 아츠넷http://www.artsnet.co.kr/ 편고재주인의 열린 사랑방에 올렸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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