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책장 속에서 옛 일기장이 나왔다
차 한잔 마시며 몇 귀절 추억여행을 해본다
1972년 10월은 2학기 수업을 포기하고 부산에 내려와 있을 때이다
서울은 10월 17일 유신 발표로 대학의 휴학이 선포되었던 그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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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10월 18일(수)
어제 저녁 계엄이 선포되었다
대학은 휴학이 시작되고...
왠지 무관해지고싶다. 나답지 않다
나는 이미 실질적인 휴학중이라서일까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
언제고 다시 돌아간다는 것을 전제 삼았지만
서울을 떠나 올때는 정말 우울했다.
하늘이 나를 조롱하듯 빗방울마저 뿌렸으니 말이다.
그러나죽 뻗은 도로, 물들어가는 석양빛 벌판, 천리길을 이어주는 코스모스의 웃음이
나의 심장에 힘을 더 해주고 있다.
-- 중 략--
편지가 왔다
지극히 짧은 이 한페이지 편지를 읽으려고 나는 왜 이렇게나 신경을 쓰고 있었을까?
나의 남자로서의 정과 감정이 편지 한 통으로 옮겨짐을 느낀다
그 것만이 내가 지금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영, 너는 귀여운 사람이었다
언젠가 내가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바라보마
난 네가 다른이들과 어울리는 생활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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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전문 -
마지막 시험지의 답안을 내고
곧장 포천행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도로변의 코스모스가
조금씩 물들어가는 나무들이 반겨주는
정다운 길을 따라 달렸습니다
머라를 차창에 기대고
불어오는 바람을 마음껏 마시며
생각에 잠겨봅니다
미워지는 사람이 떠오릅니다
누군가와 너무도 흡사한
바로 나
돌아가고 싶습니다
행복한 나의 집으로
따사로운 햇살은 내일을 위해잠들고
황금빛 대지는 점점 빛을 잃어갑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 가는가 봅니다
좀 더 생각하는
내가
되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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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다
시험을 친다는 사실을
잘쳤겠지
소리없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니까..
불현듯 나도 시험이 치고싶다
그래서 같이 걱정을 해보고싶다
며칠사이 우리 학과에 무슨 변화는 없는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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