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대통령 가족의 역할
/ 남일재 동서대 교수 정치학박사
2014-12-15 [10:18:16] | 수정시간: 2014-12-15 [10:18:16] | 30면
권력자에 아주 좋은 객관적 조언자
권력암투설에 조기 레임덕이라는 말까지 나오자, 결국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진화하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 EG그룹 회장이 연루됨은 물론,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도 거들고 나섰다. 이제 국민들은 관심의 수준을 넘어서서 막장드라마를 보는 듯하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이 청와대발 찌라시는 더 이상 단순한 찌라시가 아니라,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실체적 문건으로 승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일 국정에 개입한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 씨에 대해 "정 씨는 이미 오래 전에 내 옆을 떠났고, 전혀 연락도 없이 끊긴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동생 박지만 씨에 대해서도 "역대 정권의 친인척 관리를 보고, 지만 부부는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에 대해서도 "이들이 무슨 권력자냐, 도대체 말이 되느냐, 일개 내 비서관이고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말해 권력암투설을 일축하고 나섰다.
여기서 짚어 볼 대목이 있다. 박지만 씨 부부를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미혼이며 자녀도 없다. 박근령, 박지만 씨 두 남매만이 가장 가까운 가족이다. 그런데 이들과 일정한 선을 긋고 지내고 있는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 늘 나타났던 친인척 비리와 국정 개입을 근원부터 차단하겠다는 의지인 것으로 보인다.
하나 대통령의 가족에게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누구보다도 가까운 배우자와 자녀, 그리고 형제들은 권력자에게 아주 좋은 객관적 조언자가 될 수 있다. 즉 사적인 공간에서 허심탄회한 건의와 쓴소리 그리고 세상 동향에 대한 다양한 비공식 정보를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역할은 그 어떤 비선 조직이나 공식적 비서들로서는 해 낼 수 없는 영역이다.
박 대통령은 이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일각에서는 미혼인 여성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퇴근한 후에는 누구도 접근하기 어렵고, 공식 비공식 대면 보고의 채널이 없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가족을 통한 채널이 없다는 뜻이다. 역대 대통령들에게는 영부인과 자녀들이 있었다. 그들로 인한 부작용과 국정 폐해도 적지 않았지만 공식적으로 건네기 어려운 말들을 대통령에게 전할 수 있는 좋은 통로라는 순기능도 있었던 것이다. 이 역할을 가족 아닌 누군가가 대신하고 있다고 여겨질 때, 그것은 곧 시기와 견제, 그리고 암투로 이어질 소지가 충분하다. 혈육 박지만 씨와 비선 측근 정윤회 씨의 기 싸움으로 보이는 '청와대발 찌라시' 파동의 배경을 짐작하게 하는 함수가 성립되는 것이다. 누가 대통령에게 더 가까운가 하는 경쟁은 권력자의 주변에서 너무도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인지상정이다. 성인 예수의 제자들마저 서로 자리를 두고 다투지 아니했던가.
가족과 측근의 역할·한계 명확히 해야
향후 과제는 자명하다. 우선 문건의 진위나 유출 경위에 실체적 범법 행위가 있다면 엄정하게 밝혀야 하고 책임질 사람은 마땅히 책임져야 한다. 이것은 검찰의 몫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대통령의 측근이 감당해야 할 역할과 한계를 명확하게 해야 하는 일이다. 이 문제는 청와대 조직에서 감당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가족, 특히 배우자나 자녀가 없는 박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혈육인 동생들에 대한 배려와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 이 부분은 전적으로 박 대통령이 풀어 갈 일이다.
대통령이 동생들을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그들이 종래의 정권에서처럼 비리에 연루되고 국정에 개입하여 월권적 행위를 해서는 결코 안 되지만, 혹 정상적인 가족 간 교류마저 단절되고 있다면 그로 인해 새로운 국면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찌라시 그리고 권력암투설, 참으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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