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고재 이규진 선생님과 경상대 정헌철 교수님 두분과의 만남은 살면서 몇번 안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50을 훨씬 넘긴 중늙은이(?)들이 인터넷으로 만나 교우하고 마치 번개팅하듯 느닷없이 천리길을 달려와서 만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요즘처럼 합리적라는 말로써 치밀한 계산과 이익 추구에 열심인 세상에서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단지 같은 주제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이미 우리는 비합리적인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감흥을 정교수님은 맹자 첫 머리의 한 문장을 낭랑한 중국 사성으로서 읊어대시어 그 여운이 보통 있는 것이 아니었다.
叟不遠千里而來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王何必曰利亦有仁義而已矣...
예상대로 이선생님과 정교수님은 우리 문화를 진정으로 사랑할 뿐만 아니라 이론으로 단단히 무장하여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분들이었다. 문화, 특히 우리 고미술품과 도자기에 관한한 거의 무지상태인 나로서는 두 분의 대화 옆에서 주워들은 것만으로도 상당한 지식을 얻을 수 있어 무척 즐겁고 고마운 일이었다. 더욱 감사한 것은 건강이 좋지 못하여 일찍 귀가하신 부산민학회장 주경업선생님을 밤늦게 거의 강제(?)로 모셔서 함께한 자리는 또다른 맛이 있었다. 부산 주변을 맴돌면서 시작한 대화는 급기야 전국적 수준의 화제를 담아내었고, 중국 대륙까지 일부 공략하는 기개가 넘쳤다.
젊은날 무시로 놀러가던 부산 근교 법기 저수지 인근 야산이 고려다완의 주요한 도요지중 한곳이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막걸리잔 나누는 부산 중심지 용두산 공원아래가 옛 왜관터이며 인근 모 호텔자리가 바로 일본행 다완을 구원내던 또 다른 가마터라는 것들을 편고재 이선생과 주경업화백으로 부터 전해듣는 등 너무도 새로운 사실에 재미는 점점 더하였다.
밤이 깊어 子時를 넘기고 丑時를 느끼고야 비로소 털고 일어선 후, 아무 볼것도 없고 반길 사람도 없는 필자의 누추한 집을 기습 방문, 도자기래야 섭치 몇점밖에 없는 써늘한 수장고(?)에서 식구들 몰래 웅크리고 앉아 남자들끼리 끓여마시는 차한잔이 그래도 분위기는 제법 있었다.
다음날 명품 가득히 전시된 진화랑에서 괜히 움츠려들었는데 정헌철교수님은 슬적 슬적 한마디씩 보물급 명품을 상당수 가지고 계신다는 말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농담곁들여 지금 당장 진주로 차를 돌려 명품 감상길에 나서자고 했더니 정교수님은 부산에 다른 지인(분위기상 여운이 있음)을 만날 약속이 있다고 완곡히 사양하시는 통에 용서해 드리기로 하고 다음을 기약하였다. 나선김에 구덕문화장터를 거쳐 부산 고미술계의 큰손 금보 배영대사장과 함께한 기사식당 대구탕찌개도 맑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새롭고 한맛 더나는 듯하였다.
언양으로 다른 여정을 떠나시는 편고재 이선생님을 터미널까지 배웅해드리고 돌아서는 뒤가 무척 산뜻하고 좋았다. 사람을 만나고 정을 나누면 헤어지는 아쉬움이 늘 있기 마련이지만, 이 다음 따사로운 봄날, 진주로 정교수님네를 방문하기로 약속하여 덜 허전하였던 것이다. 지식인들이 모여서, 서로가 공감하는 화제를 나누며 긴 세월 닦아온 공력이 묻어나는 대화를 나누는 자리는 언제라도 즐겁다. 이 가을, 낙엽은 거리에 뒹굴고 바람은 싸늘해지지만 오늘같은 만남이 있는 한 우리네 가슴은 더욱 풍성하다.
풍성하다, 그래 풍성하다. 그래서 오늘 나는 너무 행복하다.
2004.11.22 아츠넷http://www.artsnet.co.kr/ 편고재주인의 열린 사랑방에 올렸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