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고재 이선생님의 글을 읽고 죄송한 마음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느닷없이 원고 청탁을 하고는 글쓴이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대뜸 <고미술품평론가>로 프로필을 달아 출판해버린 결례를 꾸짖는 말씀에 먼저 사죄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열린 사랑방에서 보여주신 고미술에 대한 애정과 해박한 지식 및 독특한 해석, 문외한이라도 대뜸 도자기 한점 가지고싶도록 이끄시는 어떤 힘으로 미루어 <고미술품 평론가>라는 명칭을 사용하셔도 좋을듯 싶은 생각에 계간지 발행인의 자격(?)으로 전횡을 한 점을 해량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2004년 가장 인상 깊었던 개인적 사건은 역시 편고재 이규진선생님을 만나고,경상대 정헌철 교수님과 함께했던 지난 11월의 1박2일이었다. 앞서의 글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요즘 어디에서 그런 순수한 만남을 얻을 수 있으며, 즐거움과 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겠는가?
편고재 이규진선생님은 참 속깊은 어른이시다. 나보다 연세가 다소 높으시기도 하지만 잠깐 스친 인연에도 정을 깊이 쏟아주시는 사랑에 나는 감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산에서 헤어진 후 얼마뒤 택배가 왔다. 내가 북녂땅 회령사람의 후손이라고 스쳐지나가듯 한 말을 기억하시고는 사진작가 故 鄭道善님의 <회령에서 남긴 사진1936 -1943> 이라는 귀한 사진집을 년말 선물로 보내오신 것이다.
정이 듬뚝 든 귀한 선물을 들고 한참이나 감동하였다. 한장 한장 넘기면서 이미 고인이 되신 내 아버지께서 걷고 달리셨을 논길, 들길, 뱃길, 산길을 나도 따라 걸을 수 있었고, 두만강이 내려다 보이는 五國山城에 올라보기도 하고, 옛날 내 아버지와 함께 지내셨음직한 어른들을 뵐 수 있었다.이 무슨 호사이며 또 행복인가? 무언가 답례를 올려야 하는데 참 마땅찮아서 아직 아무런 것도 보내올리지 못하고 있다. 정말 죄송한 일이다.
내 아버님께서는 생전에 수석을 모으시며 고향을 느끼시려고 하셨다. 찾아갈 고향이 없는 나는 수석이 진열된 방에 도자기 몇점을 덧입혀놓고 만지작거리며, 혼자서 혹은 몇 안되는 '마음 맞는 벗'들과 함께 놀곤 한다.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고 사귀면서 정을 주고 받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 편고재 이규진선생님이나 정헌철 교수님과의 만남은 퍽이나 마음 편하고 푸근하였고, 사람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마음을 열고 정감있는 말을 나누노라면 누군들 정이 넘치지 않을까? 새해에는 나역시 작은 집이나마 대문을 활짝 열고 차 한잔 나누면서 많은 분들로부터 배우는 기회를 더 가져야할 것 같다. 맹자가 한 말 처럼 '利益'을 논하기 전에 '仁義'를 먼저 논하면서 인간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平旦之氣'를 느낄 수 있는 장을 더 많이 가지고 싶은 것이다.
이규진선생님, 정헌철 교수님, 그리고 열린 사랑방에 자주 오시는 손님 여러분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계획하시는 모든 일들이 형통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05.01.08 아츠넷http://www.artsnet.co.kr/ 편고재주인의 열린 사랑방에 올렸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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