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성 장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2012년 3월 9일 / 장가계 여행을 마치면서 공항이 있는 장사(長沙)로 이동하여 간단한 시내 관광을 하였다. 장사는 호남성의 가장 큰 도시로 인구는 약 650만에 달하며 한창 발전을 하는 도시로 비교적 깨끗하게 정리된 곳이었다. 열사공원, 상강 유람 등의 일정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는 1919년부터 1932년까지 13년간의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을 시작으로, 1932년 홍구 공원의 윤봉길 의사 의거가 일어나자, 일본군을 피해 항저우, 장사 등 중국 내 여러 도시를 유랑하다 일제 말기인 40년에는 충칭으로 이전하였다.
장사 임시정부 유적지는 장사시에서도 변두리에 속하는 오래된 동네(거리 명칭이 潮宗古街였다)에 있었다. 골목 한 모퉁이에 임시정부청사가 복원되어 <大韓民國臨時政府(長沙)活動旧址, 金九活動旧址>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건물은 최근 복원한 것이나 소장 집기는 모두 임시정부 시절 사용하던 그대로라는 설명이 있었고, 유랑 생활을 하며 쫓겨 다니던 임시정부 요인들은 이 곳 장사에서는 비교적 안정되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하였다.
우리가 이처럼 즐겁게 중국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된 데는 바로 이 임시정부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의 피와 땀이 그 밑거름이 되었다는 생각에 그만 숙연해졌다. 임시정부는 일본의 중국 본토 침략에 따라 다음과 같이 이동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지휘하였다. 상하이(上海, 상해): 1919년 4월 13일 ~ 1932년 5월 / 항저우(杭州, 항주): 1932년 5월 ~ 1932년 10월 / 전장(鎭江, 진강): 1932년 10월 ~ 1932년 11월 / 난징(南京, 남경): 1932년 11월~1937년 11월 / (피난) 자싱(嘉興, 가흥): 1935년 10월~1936년 2월 / 창사(長沙, 장사): 1937년 12월~1938년 7월 / 광저우(廣州, 광주): 1938년 7월~1938년 11월 / 류저우(柳州, 유주): 1938년 11월~1939년 5월 / 치장(綦江, 기강): 1939년 5월~ 1940년 9월 / 충칭(重慶, 중경): 1940년 9월 ~ 1945년 11월 그리고 (피난살이를 구이린(桂林,계림)에서 잠깐 하였다)
위의 유적지 중 임시정부 유적지가 복원된 곳은 상하이, 항저우, 충칭 그리고 장사이나 그 외 임시정부 활동지에 대한 유적지 고증 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듯있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소수나마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순례 여행이 시도되고 있는 점을 계기로, 앞으로 중국 여행을 단순 관광을 넘어 우리 근현대사를 조망해보는 의미있는 여행으로 승화사켜 가리라고 기대를 걸어본다.
건물 전면 / 최근 엣 모습으로 복원시켰다함
건물 뒷면
회의실 / 내부 집기는 옛날 쓰던 것 그대로라 함
회의실
회의실
이청천(李靑天) 장군 침실 -중국풍이라 사진은 화려해 보이나 사진찍기도 어려운 아주 좁은 공간, 검소한 곳이었다.
요원들 침실 / 이청천 장군 침실로 가는 통로에 침대만 두고 있었다
이청천 장군 서재
현익철 침실 /현익철은 1938년 5월 김구 이청천, 유동렬 등과 함께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의 합당 문제를 논의하다가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임시정부 활동 사진 전시
임시정부 유적지 주변 오래된 아파트
골목길 분식점
속옷 판매점 - 부인에게 빨간 속옷을 사주려는 일행중 노익장 한분
정육점 냉장 냉동 없이 고기를 그냥 노출시킨채 팔고있었다.
주변 거리
골목 어귀 모습 - 우리나라 60년 70년대의 풍경과 흡사하다
임시정부 유적지가 있는 곳의 거리 명칭은 조종고가(潮宗古街)로 장사시에서 엣거리 보존지역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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