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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을 찾아 모스타르Mostar로

Etranger nam 2017. 11. 19. 22:51

 

보스니아 내전의 상흔을 찾아 모스타르 Mostar

 

 

모스타르Mostar는 보스니아의 헤르체고비나 지역 중 가장 큰 도시이다.

네레트바 강을 끼고 있으며, 사라예보 다음으로 잘 알려진 주요 관광지이다.

구시가지는 신시가지와는 다르게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될 만큼 옛 모습 그대로이다.

네레트바 강을 중심으로 보스니아인이 거주하는 지역과 크로아티아인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세르비아인도 상당히 거주하고 있었으나 전쟁 이후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으며 지금은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이 도시를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1992년에 보스니아 내전이 터지자 모스타르도 평화가 깨졌다.

세르비아 인과 크로아티아인 그리고 무슬림이 뒤엉키면서 복잡한 양상으로 충돌했다.
세르비아 군이 모스타르를 진격해오자 카톨릭과 이슬람교도들은 뭉쳐서 세르비아 군을 막아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욕심이 문제였다. 세르비아 군이 물러나자 이번에는 크로아티아인이 무슬림을 공격했다. 뒤통수를 친 것이다.
무슬림은 크로아티아군에게 인종청소를 당했고 3천명이나 죽었다. 1993119일에 크로아티아 군대는 모스타르 다리를 폭파하여 무슬림들을 고립시키도 하였다.

   

모스타르 다리 1566년 오스만 제국이 세운 이 다리는 카톨릭과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다리였으나, 1993년 보스니아 내전 중에 크로아티아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2004년에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복원되었다.

 

보스니아 이슬람 지역에는 아직도 많은 건물들의 뱍에는 내전중 총격전이 벌어졌전 현장을 말해주는 탄흔이 그대로 남아있다.

 

 

 

 

 

 

 

 

 

 

 

 

 

 

 

여전히 낙후된 이슬람 지역에 조금씩 복구와 개발의 움직임이 보인다

 

모스타르 다리로 가는 길목에는 관광객을 밎이하는 기념품점들이 많다

 

 

 

이 기념품 점에서 내전 당시의 탄피로 만든 병따개를 하나 샀는데 공항에서 압수당하였다. 참 아쉽다.

 

 

모스타르 다리,  정식 명칭은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 영어는 Old Bridge, ‘오래된 다리라는 뜻이다

1993119일 크로아티아 군대는 무슬림들을 고립시키고자 모스타르 다리를 폭파 하였다.
2004
년에 복원된 이 다리에는 ‘1993년을 잊지 말자(Don’t forget 1993)’라는 조그마한 표시석이 세워져 있다.

 

 

 

 

 

네레트바 강변 작은 오솔길은 기념품점과 카페 들로 가득하다. 내전의 아픔은 잊혀진 듯 한가한 여행객이 카페에서 책을 읽는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네레트바 강과 주변 풍경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19979월 나토 평화 유지군은 네레트바 강에서 다리 조각들을 찾아내었고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20047월에 복원 되었다.

2004723일에 다리 준공식에는 세계 10개국 정상과 영국의 찰스 황태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이 참석하여 보스니아의 평화를 기원했다 스타리 모스트(Old Bridge)’2005717일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Don’t forget 1993’ 표지

 

 

 

 

다리 건너 신시가지는 평범한 현대 도시였다.

 

 

보스니아의 공식 국명응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Bosnia And Herzegovina)’이다,
인구는 390만 명, 1인당 국민소득은 3900달러로 비교적 낙후된 지역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보스니아인48%, 정교도계 세르비아인 37%, 카톨릭계 크로아티아인 14%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보스니아는 발칸 반도가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우게 되는 모티브가 되는 곳이다.

1908년에 오스트리아 제국은 보스니아를 강제 병합한 후 1914628일 오스트리아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가 군대를 격려한 후 세르비아의 라틴 다리를 지나던 도중 19세의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체프가 쏜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것이다.

19924월부터 199512월까지 38개월 동안 보스니아 내전이 일어나 20만 명이 사망하고 220만 명의 난민이 생겼으며, 세르비아인들은 이슬람교도를 속칭 인종청소로 불리우는 대학살을 감행하기도 했다.

199512월 데이턴 협정으로 보스니아·크로아티아인 중심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세르비아인 중심의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1국가 2체제로 구성됐고 연방정부는 3인 공동대통령제를 채택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