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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그 깨끗하고 조용한 도시국가

Etranger nam 2016. 5. 13. 06:14

룩셈부르크(Luxembourg) 깨끗하고 조용한 도시국가

 

2012년 봄 유럽 여행 중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도중, 점심을 먹기위해, 잠깐 들린 나라 룩셈부르크.

우리나라 한국전쟁때 참전한 나라로 알고는 있지만 여전히 미지의 국가이다

작지만 부유하고 매우 도덕적인 삶을 산다는 막연한 정보 이외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나라였다

 

거리는 아주 조용하고 깨끗하였다.
도시국가 룩셈부르그, 중심가 왕궁및 행정타운 그리고 노트르담 대성당 (Cathedral Notre-Dame de Luxembourg) 사이에 작게 열린 장터.

그 정도가 패키지 여행 도중 짧은 시간 우리가 둘러볼 수 있는 전부였다.

 

백과사전에서 정보를 찾아본다

정식 명칭은 룩셈부르크 대공국(Grand Duchy of Luxembourg). 수도도 룩셈부르크(Luxembourg).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위치하며, 면적은 2,586㎢, 인구는 48만 6,000명(2008년 기준),

주요 민족은 룩셈부르크인이 63%, 포르투갈인 13%, 프랑스인 4.5%, 이탈리아인 4.3% 등이다.

언어는 룩셈부르크어와 독일어·프랑스어가 사용되며, 종교는 가톨릭교가 87%, 개신교 등이 13%이다.

기후는 온대의 온화한 기후로, 발달한 철강공업으로 풍요한 생활을 누림, 총수출의 90%가 철강제품.

2007년 현재 국내총생산은 501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10만 4,673 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입헌군주제의 의원내각제이며,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60석)이다.

주요 정당은 기사당, 사회당, 자유당, 녹색당 등이다.

 

 

 

 

 

 

 

 

 

 

 

 

 

 

 

 

 

 

아르메 광장, ‘무기의 광장’이라는 뜻으로, 예전에 위병들이 주둔하던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룩셈부르크 여행에서 중심이 되는 광장으로, 이곳에 시청사, 관광 안내소, 카페, 레스토랑, 상점 등 주요 시설이 모여 있다.

 

 

 

 

 

룩셈부르크 문화센터 Cercle Cité Luxembourg

 

 

 

 

 

 

 

 

 

룩셈부르크 노트르담 대성당 Cathedral Notre-Dame de Luxembourg 

 

 

 

 

 

 

 

 

 

 

 

 

 

 

 

 

노트르담 성당 뒤편 작은 광장에 서있던 샤를로트 여대공의 동상 (Monument of Grand-Duchess Charlotte)

 

 

 

 

그랑 뒤칼 왕궁(Palais Grand Ducal) 룩셈부르크를 대표하는 왕궁.
1418년에 처음 세워졌고,  1554년 폭발 사고로 전소후, 1573년 스페인 통치 시절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원래는 시청으로 사용되었는데, 1841년부터 룩셈부르크의 대공이 머무는 궁전이 되었고, 지금은 대공의 영빈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룩셈부르크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 박물관  Musée d’Histoire de la Ville de Luxembourg

 

 

 

기욤Guillaume 2세 동상 (대공 빌럼 2세Willem II, 기욤은 빌럼의 프랑스어 표기)을 중심으로 기욤광장이 있다

 

 

 

헌법 광장(Place de la Constitution) 페트루세 계곡과 아돌프 다리 근처에 있는 광장.
언덕 위에 있어서 룩셈부르크 신시가지의 아름다운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다.
광장 중앙에는 ‘Gelle Fra’라는 기념비가 있는데, 이것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전사자들을 기리는 기념탑으로, 탑 꼭대기에 황금 여신상이 있다.

 

 

 

 

아돌프 다리, 석재로 이루어진 아치교로  룩셈부르크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연결하고 있으며, 아돌프 공작이 통치하던 1889-1903년에 건설되었고 건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아치교로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룩셈부르그 기차역사

 

 

룩셈부르크는 963년에 지그프리드(Siegfried) 백작에 의해 건국되어, 1443년까지 백작령 및 공작령으로 존속되어 오다가 1443년 부르군디(Burgundy) 공작에 의해 점령당한 뒤, 1815년까지 지배를 받았다. 1815년 빈회의에서 룩셈부르크의 지위가 종전의 공국에서 대공국으로 승격되는 동시에 독립이 부여되었으나, 네덜란드 국왕이 대공을 겸하게 되고 프러시아 군대가 주둔하게 되어 네덜란드와 프러시아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1867년 1월 1일 독립하여 런던조약에 의해 영세중립의 지위를 얻고 프러시아 군대가 철수하였으며, 1868년 10월 17일 헌법을 제정하였다. 1890년에 네덜란드 왕 윌리엄(William) 3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함에 따라 독자적 왕가를 가지게 되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때는 독일에 점령당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룩셈부르크의 국가권력은 삼권분립에 의해 행사되나 입법과 행정의 분립은 여타 국가에 비해 불분명한 편이다. 대공은 국가원수로 수상 및 각료를 임명할 수 있다.

현재 앙리(Henri) 대공이 2000년 10월 즉위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있으며, 융커(Jean-Claude Juncker) 총리가 2004년 7월 3기 총리로 취임하여 내각을 이끌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도좌파를 자처하고 있고, 1945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1867년 런던회의에서 영세중립국이 되었으나 1948년 이를 포기하였고, 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협력을 기조로 하여 유럽의 통합을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의 하나로 삼고 있다. 또한 베네룩스동맹을 통해 네덜란드·벨기에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룩셈부르크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우방국으로 다른 베네룩스 제국과 함께 국제무대에서 우리 나라의 입장을 계속 지지해 왔으며, 6·25전쟁 참전국이기도 하다. 1949년 8월 우리나라를 승인하고, 1961년 11월 4일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하였으며, 2008년 현재 주 벨기에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친한단체로는 1973년 10월 발족된 한국·룩셈부르크 친선협회가 있으며, 양국 간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1977년에는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민간경제협력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우리나라와 룩셈부르크는 1970년 6월에 사증면제 협정을 비롯하여 1976년 9월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 협정, 1978년 6월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경제협력 협정, 1984년 11월 한국·룩셈부르크 이중과세방지 협약, 1987년 1월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해운 협정, 2003년 4월 항공 협정 체결.

우리나라의 대 룩셈부르크 수출액은 2405만 달러로 산업전자제품·기계부품 등이 주종목이며, 수입액은 6323만 달러로 철강제품·섬유류·화학제품 등이 주종목이다.

한편, 양국 간에는 1977년 5월 국회 6·25전쟁 참전의원친목회의 룩셈부르크 방문, 1982년 4월 한국·벨기에의원친선협회 우리 측 의원단의 룩셈부르크 방문이 있었고, 제24회 서울올림픽에는 14명의 룰셈부르크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2007년 현재 고려제강 산하 업체가 진출해 있으며, 13명의 한국민 교민과 49명의 체류자가 있다.

한편, 북한은 2001년 3월 5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2006년 현재 주 영국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북한의 대 룩셈부르크 수출액은 9만 4,000 달러로 의류가 주종목이며, 수입액은 2만 2,000달러로 플라스틱제품이 주종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