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인류 약탈문화재 창고
고고학 및 민속학의 수집품들이 소장되어 있으며, 런던의 블룸스베리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이 박물관과 부설 도서관은 1753년 한스 슬론 경(1660~1753)이 소장하고 있던 예술품과 장서를 정부가 매입하면서 설립되었다.
의회법에 따라 설립된 이 박물관은 1759년 대중에 공개되었으며, 당시에는 몬터규 백작의 저택에 소장품들을 전시했다.
현재의 건물은 로버트 스머크 경에 의해 신고전양식으로 설계된 것으로 1823~52년 몬터규 백작 저택의 부지 위에 건설되었다.
이 박물관의 소장품들은 고대 및 중세의 공예품과 예술품들이다.
민속학적 수집품들은 런던에 있는 인류박물관에 따로 전시되어 있다.
영국 자체의 문화재는 거의 없고 세계 각처의 식민지에서 약탈해 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국관도 소장품이 많지는 않으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집트의 유물들이 눈길을 끈다.
로제스타 석
1799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프랑스인에 의해 발견, 영국인의 손에 들어왔지만프랑스의 천재 언어학자 샹폴리옹에 의해 해독.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이 기념비는 기원전 196년에 이집트 신관들에 의해 세개의 언어, 첫째단은 이집트 상형문자로 둘째단은 민용문자로 셋째단은 그리스어로 기록되어져 있다.
내용은 당시 이집트의 프톨레마우스5세의 공덕을 찬양하는 글이다.
이집트 람세스 2세의 흉상. 요셉의 친구였다고 전해진다
미이라가 수천년전의 이비크의 생활을 대변하고 있다.
이집트에서 미이라를 만들기 훨신전 자연산 미이라. 장기도 빼내지 않고 사막에 묻었지만 근육이 살아있는 듯...
낮 시간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과 밤의 차거운 바람에 의해 급속 건조와 급속냉동이 반복되어 보존이 가능했다.
이 미이라는 BC4500년 경에 이집트에서 행해진 미이라 형태로 시신에 아무처리도 하지 않고 태아가 엄마 뱃속에 있던 자세로 해서 모래속에 묻는 식의 장례방식을 보여준다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표현한 벽화. 2천년전의 색감이 아직도 선명하다
앗시리아관의 날개달린 신성한 동물, 라마수(Lamassu).
너무나도 긴 수염을 기른 인간의 머리에 독수리의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소의 몸체를 하고 있다.
라마수는 인간의 지혜와 독수리의 용맹, 소의 부지런함을 이상으로 한 상상 속의 동물이다
앗시리아관에는 아시리아의 치열했던 전투 장면이 그려진 부조벽화가 벽면 가득히 전시되어 있다,
이 벽화들은 왕궁터의 궁전 복도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부조들인데, 앗시리아군의 속도전, 아시리아군의 물속 공격, 성벽을 부수는 공성무기 등, 전쟁 속에서 성장한 아시리아인들의 호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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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유물들도 매우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19세기에 파르테논 신전 주변에 나뒹굴던 건물 잔해에서 떨어져 부서져있던 조각들을 모아온 것이다
한국관도 소장품이 많지는 않으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대영박물관의파르테논 마블스, 조각난 문화유산>
파르테논의 역사는 고난의 과정 그 자체였다.
(비록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라고 여겨질 정도다.
파르테논은 3세기경 대화재로 내부 일부가 손상되었다.
그리스의 아테나 여신을 모시는 신전으로 출발했지만 기독교 전파 이래 아테네 시민들의 뜻과 무관하게 이교도 성지, 교회 등으로 바뀌는 기구한 여정을 거쳐왔다. 1458년 투르크 점령 뒤에는 이슬람 사원을 거쳐 화약 무기고로 쓰였다.
20세기에는 히틀러의 '신질서'를 상징하는 만(卍)자 깃발이 내걸리는 '신성모독'을 당하기도 했다.
파르테논의 '진정한' 수난은 영국 외교관 엘긴(Elgin) 경이 그리스 주재 영국 대사에 임명되는 오스만제국(1299~1922) 말기(1799년)에 이르면서 본격화한다.
엘긴 경은 당시의 정치․외교적 상황을 적절히 활용해 오스만 당국과의 관계를 개선한 뒤 파르테논에 접근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오스만제국의 부패한 관료들에게 뇌물을 주고 대사라는 신분을 남용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엘긴 경은 기계공과 석공들을 고용해 파르테논의 대리석 조각판들을 잘라 영국으로 가져갔다.
"현존하는 파르테논 조각 가운데 절반 가량이 런던 대영박물관에 있을 정도의 엄청난 양“이었다.
저자는 애초 엘긴 경이 그 대리석 조각판들을 스코틀랜드의 자신의 집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로 쓰려고 했다고 보았다.
훗날 파르테논 마블스의 그리스 반환에 반대하는 이들이 강조하는, 고대 예술 연구와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엘긴 경의 '명분'이 허구였다는 것이다.
엘긴은 원정이 막바지로 접어들 즈음 아크로폴리스에서 최고의 작품을 엄청나게 그러모았다.
파르테논 마블스의 반환 논쟁은 엘긴 경이 재정 위기로 조각상을 영국 정부에 판 직후부터 시작되어 200년간 이어졌다. 저자에 따르면 파르테논 조각 반환 반대론자들의 논거는 크게 다섯 가지다.
▲ 조각들을 떼어내 영국으로 가져간 것은 예술과 고전학 연구에 크나큰 축복이었음 ▲ 아테네가 아니라 런던에 있었기에 온전했음 ▲ 아테네보다 런던에 있어야 더 안전함 ▲ 엘긴 경은 문화재를 보전하겠다는 심정에서 조각을 떼어냈음 ▲ 조각의 반환은 주요 박물관과 컬렉션을 절멸하는 선례로 남을 것 등이 그것이다.
문화재 '약탈' 문제는 대영박물관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19세기 말 영국의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은 "역사는 문명을 창조했지만 침략자는 문화재를 약탈했다"라고 일갈한 바 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의 많은 전시실이 제국주의 시절 힘의 논리를 앞세운 영국과 프랑스가 약탈해 간 피식민 국가들의 문화재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다.
* 2015.10.26. 오마이뉴스 정은균기자 기사
대영박물관의 파르테논 마블스, 누가 진짜 주인인가 [서평]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파르테논 마블스: 조각난 문화유산>에서 발췌 수록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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