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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여행/캄보디아

앙코르와트 그 신비의 장소에 서다.

Etranger nam 2016. 5. 20. 00:03

앙코르와트 그 신비의 장소에 서다.

 

앙코르는 9~15세기에 있었던 크메르 제국의 수도였다.

앙코르와트는 크메르의 왕인 수리아바르만 2세가 최고신인 비슈누 신에게 바치기 위해 세웠다.

앙코르와트는 수리아바르만 2세 통치 초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나 왕이 죽을 때까지도 완성되지 못했다.

벽과 해자로 둘러싸여 있는 사원 건물들은 왕을 비슈누 신으로 묘사한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조각들은 왕이 군대를 사열하고 사람들을 접견하는 등 군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앙코르와트는 수리아바르만 2세가 자신의 유해를 안치하고 상징적, 종교적으로 비슈누 신과 자신을 영원히 동일시할 수 있는 거대한 소우주의 건축물로 세운 것이다.

앙코르 와트는 사원의 도시라는 뜻으로, 앙코르와트가 있는 앙코르는 1992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2011년 1월 26일 신비의 땅 앙코르와트에 입성하였다.

 

 

 

 

 

 

 

 

 

 

 

 

 

 

 

 

 

 

 

 

 

 

 

 

 

 

 

 

 

 

 

 

 

 

 

 

 

 

 

 

 

 

 

 

 

 

 

 

 

 

 

 

 

 

 

 

 

 

 

 

 

 

 

 

 

 

 

 

 

 

 

 

 

 

 

 

 

 

 

 

 

 

 

 

 

 

 

 

 

 

 

 

 

도시의 사원, 사원의 도시  앙코르와트  Angkor Wat in Cambodia

 

1860년 초 프랑스 박물학자 알베르 앙리 무오(Albert Henry Mouhot)는 진기한 나비를 채집하기 위해 현지 안내인 네 명과 함께 캄보디아의 밀림 속을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 도착하자 안내인들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면서 더 들어가면 몇 백 년 동안 텅 빈 도시가 나오는데 그곳에는 주술에 걸린 수많은 유령들이 들끓고 있다고 했다.

무오는 텅 빈 도시가 있다는 말에 흥미를 느끼곤 직접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안내인들을 설득해 밀림 속으로 계속 들어가던 무오는 갑자기 펼쳐진 장관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는 일기에서 그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늘의 청색, 정글의 초록색, 건축물의 장엄함과 우아한 곡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리스와 로마가 남긴 그 어떤 유적보다도 위대하다. 세계에서 가장 외진 곳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앙코르와트를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모습

거대한 인공호수와 끝없이 이어진 수로, 수많은 유적지들을 볼 때 이 일대에 매우 번창한 거대한 도시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오가 발견한 곳은 400년 전에 멸망한 옛 도시 앙코르의 폐허로 현재 캄보디아의 북서부 시엠레아프의 톤레사프호수 북쪽 일대(일명 앙코르 지방)에 있는 돌과 벽돌로 지어진 앙코르와트 유적군이다. 앙코르와트는 ‘도시의 사원’이라는 뜻으로, 그 일대 수많은 앙코르 건축물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유적지인데 때로는 일대 유적군 전체를 ‘앙코르와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오가 앙코르와트를 발견할 당시 그곳에는 1000여 명의 승려가 기거하고 있었다.

앙코르와트를 복원한 모습


앙코르와트가 위치한 시엠레아프는 캄보디아 3대 도시 중 하나로 한국의 경주 같은 고대 도읍지이다. 앙코르와트에는 폭이 넓은 도로가 동서로 질서정연하게 뻗어 있고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정교하게 건축한 사원 600여 개가 세워져 있다. 그중 10여 개는 크기가 이집트의 룩소르대신전이나 중세 유럽의 대성당과 비교할 만하다.

앙코르와트를 정면에서 본 모습

세계에서 가장 큰 석조 건물, 가장 큰 종교 건축물로 앙코르와트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계단형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 있는데 미물계 · 인간계 · 천상계로 구분된다고 한다.


12~13세기에 앙코르왕국은 두 왕의 강력한 통치로 번성했다. 태양의 수호자로 일컬어진 수리아바르만 2세는 지금의 타이 영토 정도로까지 세력을 떨쳤고 ‘도시의 사원’ 앙코르와트를 건설했다.

앙코르와트는 동서 1500미터, 남북 1300미터의 웅장한 사원으로, 약 2만 500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 37년 동안 건설했다. 몇 겹의 성곽이 앙코르와트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마지막 성곽 바깥은 다시 폭 190미터의 거대한 해자가 둘러싸고 있다. 앙코르 유적 중에서는 드물게 서쪽에 정문 입구를 두었으며 큰 탑문이 있다. 탑문에서부터 사당까지는 너비 9.5미터, 길이 475미터인, 돌이 깔린 도로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이 유적은 수리아바르만 2세가 힌두교 비슈누에게 바친 것으로, 그가 죽은 다음에는 묘로 쓰인 것 같다.

앙코르와트로 들어가기 위해선 사방을 둘러싼 해자 위의 다리를 지나야 한다.


사원을 제대로 보려면 3생(전생 · 현생 · 내생)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1층은 미물계, 2층은 인간계, 3층은 천상계를 상징한다. 건물은 세 겹으로 된 회랑과, 이 세 겹의 회랑으로 둘러싸인 중앙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 겹의 회랑은 중앙 사당 쪽으로 들어갈수록 한 단씩 높아져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를 이룬다.

 


제1회랑은 동서 215미터, 남북 187미터이고 총 800여 미터인데 회랑벽면에는 크메르제국의 신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벽화가 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역사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캄보디아에서는 역사교과서와 같다. 박물관 유물을 훑어보듯 돌아보아도 족히 1시간은 걸리는 이 엄청난 ‘4단 병풍식’ 부조에는 힌두교의 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와 〈라마야나(Ramayana)〉에 나오는 카우라바(Kaurava)족과 판다바(Pandava)족 간에 벌어진 쿠루크세트라(Kurukshetra) 전투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수리아바르만 2세가 코끼리를 타고 병사들 사이를 지나가는 장면도 있고 힌두교에서 말하는 천당과 지옥을 표현한 장면도 있다. 88명의 아수라와 92명의 신이 장생불로약을 추출하려고 ‘넓은 우유의 바다를 휘저어’ 버터를 만드는 신화 속의 한 장면도 묘사되어 있다. 800여 미터에 이르는 부조가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앙코르와트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


신의 영역인 높이 65미터의 중앙탑은 70도가 넘는 가파른 성벽 그 자체로 담력이 없는 사람은 오르기를 포기할 정도다. 능숙한 등산가라 할지라도 두 손 두 발을 써서 기어 올라가야 하는데 이를 신에 다다르기 위한 예의라고 한다. 모서리에 네 개의 탑이 서 있는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중앙탑은 앙코르와트를 상징하는 곳이다. 이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궁궐처럼 화려한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앙코르와트는 신의 세계를 지상에 구현한 사당인데 중앙탑은 힌두교와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받드는 수미산(須彌山)을 나타내고 참배 길은 세계의 기축(基軸) 도로를 모방하며 둘레를 에워싼 벽은 히말라야산맥을, 해자는 세계의 끝인 깊은 바다를 상징한다. 사원 안의 곳곳에는 비슈누에 관한 신화가 조각되어 있고 국왕들의 모습을 비롯하여 코브라 · 무희의 모습 등이 새겨져 있다.

수리아바르만 2세의 후계자인 자야바르만 7세는 30년을 통치하면서 세력을 최대로 확장시켜 현재의 캄보디아 · 라오스 · 타이 · 베트남 남부에 걸치는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고 도읍인 앙코르톰을 재건하고 병원 · 숙박시설 · 도로를 건설했다. 그가 건설한 건물에 이런 글귀가 남아 있다.

                                      
“임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 백성의 고통이다.”

               
앙코르왕국이 최전성기를 구가할 때 앙코르는 동서 29킬로미터, 남북 10킬로미터에 100만 명이나 거주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당시의 상황은 1296년 중국의 사신으로 와 앙코르에 1년을 머물렀던 주달관이 쓴 《진랍풍토기(眞臘風土記)》에 잘 나와 있다. 그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왕은 밤마다 황금 탑에서 잠을 자고 황금 창문이 있는 방에서 국사를 본다. 이곳에는 엄청난 보물이 있다고 들었다. 왕궁 곳곳에 경비가 삼엄하다. 왕은 황금 관을 머리에 썼으며 재스민 나뭇잎으로 머리를 두를 때도 있다. 또 목에는 1.3킬로그램쯤 되는 진주 목걸이를 팔에는 금팔찌, 발에는 호랑이 눈으로 장식한 황금 고리를 찼다. 왕은 황금으로 만든 검을 들고 외출을 했다. 왕은 백성을 보호하는 마법을 전해 받은 존재로 간주되었다. 왕은 왕국의 평화를 위해 여자로 변신한 머리 아홉 달린 뱀과 매일 밤 섹스를 했다. 왕궁 밖을 행차할 때는 황금 칼을 차고 코끼리를 탔으며 수많은 수행원이 뒤를 따랐다. 왕궁에는 다섯 왕비들이 있는데 왕비들은 다른 여자들처럼 맨발에 머리를 틀어 올리고 우유처럼 하얀 유방을 드러내고 다녔다. 대다수 사람들은 살색이 아주 까맣지만 이들 왕비들은 햇빛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