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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유적과 거대 식물의 사투, 앙코르톰 그리고 바이욘 사원

Etranger nam 2016. 5. 20. 00:15

 

고대 유적과 거대 식물의 사투, 앙코르톰 그리고 바이욘 사원

 

앙코르는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도시'라는 의미이다. 또한 톰은 크메르어로 '크다'를 의미한다.

앙코르 톰은 9 km²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자야바르만과 그 후대의 왕에 의해 건설된 여러 유적군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앙코르 톰의 중심에는 자야바르만의 상이 있는
바이욘
사원이 있고, 그 위쪽으로 빅토리 광장 주변으로 주요 유적군이 자리잡고 있다. 주위의 유적군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앙코르 톰은 주변 3km의 수로와 라테라이트로 만들어진 8m 높이의 성벽에 둘러 쌓여있다.
외부에는 남대문, 북대문, 서대문, 사자의 문 그리고 승리의 문 다섯개의 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각 성문은 탑이 되고 있고, 동서남북 사방에는  관세음보살
이 조각되어 있다.
또 문으로부터 수로를 연결하는 다리의 난간에는 나가의
상과, 이 나가를 당기는 아수라와 기타 신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앙코르 톰의 중앙에는 바이용 사원이 있고, 그 주변으로 코끼리 테라스 문등완의 테라스 프레아 피토우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무대로도 유명한 앙코르톰을 둘러보며 정산을 차리지 못했다.
도저히 상상조차 못한 광경 고대유적과 거대 식물의 사투를 눈앞에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바이욘 사원은 앙코르와트와 함께 앙코르 유적지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으로 자이야와르만 7세때 건립되었다.

갤러리 둘레만 무려 1,200m 총높이 43m3층짜리 건물에 54개의 탑(36개만 현존)216(원래 갯수)의 얼굴을 가진 사원이다. 바이욘 사원은 주변의 울창한 밀림이 이 사원을 가리는 바람에 이 곳이 앙코르톰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이나 지난 후의 일이었다. 또 이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약간의 오해를 거쳐 1925년 벽에 새겨진 기록에서 관음보살에 관한 내용이 발견되어 이 사원이 자이야와르만 7세에 의해 세워진 불교 사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건축연대가 밝혀지기는 했지만, 바이욘은 아직도 앙코르 유적지 가운데 수수께끼 같은 사원으로 남아있다.

이 사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를뿐더러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원은 앙코르와트가 지어진지 100년 후에 지어졌다.
기초구조와 사원의 초기 건축물들은 폐허가 되어버려
알아낼 수 없게 되었고, 단지 이 사원이 왕궁의 한 가운데에 있으므로 메루산(고대 인도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의 의미로 지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할 따름이다.

 

 

 

 

 

 

 

 

 

 

 

 

 

 

 

 

 

 

 

 

 

 

 

 

 

큰 왕성’이란 의미의 앙코르톰 역시 신의 세계를 모방해 건설했는데 높이 8미터, 한 변이 3킬로미터인 정방형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폭 100미터의 해자가 주위를 두르고 있다. 규모만 보면 앙코르와트보다 더 크다.

앙코르톰으로 들어가는 문

앙코르는 왕도(王都), 톰은 크다(大)는 뜻이다. 3킬로미터의 성벽과 그 바깥의 해자가 정사각형으로 주위를 둘러싸고, 중앙에는 세계의 중심이라는 바이욘사원이 높이 솟아 있다.

해자를 지나는 다리 난간은 ‘유해교반(乳海攪拌, 우유바다 휘젖기)’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한쪽에는 54명의 신이, 다른 한쪽에는 54명의 악마가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거대한 뱀의 몸통을 붙잡고 있는 형국이다. 유해교반이란 남녀교합을 우주창조의 모습으로 표현한 힌두교의 창조신화이다.

해자 위의 다리 난간에 있는 조각상

앙코르톰 중앙부에는 높이 54미터의 바이욘사원(납골당이 있는 불교 사원)이 있다.
바이욘사원에는 54기의 사면탑(四面塔)이 있는데 사면이 부처 얼굴인 사면불안(四面佛顔) 관세음보살을 탑의 당상부에 안치한,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건축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 사면불안은 사방팔방을 자비로써 비춘다고 하는데 자야바르만 7세는 스스로를 관세음보살과 동일시하면서 사면불안을 만들었던 것이다. 사면불안은 사방정토를 상징하며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다.
바이욘사원은 세계의 중심과, 왕의 지배가 전 세계에 미친다는 것을 상징한다.

바이욘사원의 부처상으로 사면에 부처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바이욘사원을 지나면 벽에 새겨진 코끼리 조각에서 이름을 딴 코끼리 테라스가 있다.
코끼리 테라스는 병사들을 사열할 때 이용했던 긴 회랑으로, 중앙의 국왕 전용 테라스에는 반은 새(독수리)고 반은 사람인 가루다 조각상이 있다. 그 앞으로 동쪽 승리의 문을 향해 행군용 도로가 곧게 뻗어 있다.
나병왕(Leprous King)의 테라스는 7미터 높이의 기단에 부조가 뛰어난 다섯 개의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크메르 왕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일부 크메르 왕이 나병을 앓은 것으로 추정한다.

바이욘사원의 북쪽에 있는 바푸온사원은 힌두사원인데 앙코르톰보다 앞선 시기에 건설되었다.
원래는 바이욘사원보다 더 높았다고 한다. 바푸온사원 북쪽에 접해 있는 왕궁 터에 피미아나카스사원이 있는데 이 사원도 앙코르톰 이전에 건설된, 피라미드 형태의 힌두사원이다.
상당 부분이 붕괴되었지만 계단을 통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피미아나카스사원

앙코르톰 동쪽에 거대한 나무뿌리로 유명한 타프롬(Ta Prohm)사원이 있다. 이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톰을 건설하기 전에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불교사원이다. 이 사원의 방 한 곳에는 벽면과 천장을 각종 보석으로 장식해 크메르왕조의 영화를 한껏 뽐냈는데 현재는 모두 도굴되어 보석이 박혀 있던 구멍만 남아 있다. 기록에 의하면 타프롬사원은 전성기 때 3000여 마을을 통치했고 8만 명이 사원을 관리했다고 한다. 이 사원은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무대로도 유명하다.

영화 〈툼레이더〉에 배경으로 등장했던 타프롬사원

반얀트리 나무가 사원을 뒤덮고 있다.

크메르인들은 석재를 쉽게 구할 수 없는 밀림에다 어떻게 앙코르와트 유적의 건축물들을 세웠을까?
앙코르와트 유적군에 사용된 건축 재료는 연와(벽돌) · 라테라이트 · 사암이다.
벽돌(12인치×6인치×4인치)은 서로 마주대고 비벼서 모서리를 매끈하게 한 후 조심스럽게 쌓고 라임 · 야자 · 설탕 · 덩굴식물의 수액으로 접합했다. 벽돌을 쌓은 후 벽 표면을 문지르거나 석회와 모래로 만든 회반죽을 바르고 그 위에 조각한 후 치장했다. 대부분의 벽돌은 직경 2.5센티미터, 깊이 3센티미터의 구멍을 뚫고 철제로 보강했는데 이것은 벽돌이 지정된 위치에 견고하게 설치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매우 두꺼운 벽인 경우 내부를 벽돌 조각과 흙으로 채웠다.
회반죽 사용은 9~12세기에 절정을 이루었고 그 후 쇠퇴했다.

후기에는 주로 라테라이트와 사암을 사용하여 건설했다.
라테라이트는 크메르 지역의 특수한 재료로, 공기와 만나면 단단해지고 절단하기 쉬운 철분을 함유한 점토이다.
주로 건물의 토대나 평평한 단, 계단이나 담을 쌓을 때 사용한다.
대체로 두께 16인치, 폭 12~20인치, 길이 23~32인치로 제작했는데 때로는 보다 커다란 형태로도 만들었다.
사암은 바위를 가열하여 약 4톤의 덩어리로 잘라 사용했다.
사암으로 건축할 경우 모르타르를 사용하지 않고 매끈하게 표면을 갈아 밀착시켰다.
문틀 · 창문 · 문턱 · 조각의 하단부는 편암과 현무암을 사용했다.

앙코르와트 유적지 일대 항공사진

앙코르와트 유적군의 건축은 아치를 사용하지 않고 돔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돔 형태를 내어쌓기법을 사용하여 해결했는데 돔은 올라갈수록 두께가 얇아진다.
결론적으로 앙코르와트의 유적군의 대형 건축물은 빈틈없는 설계와 유효적절한 재료로 척박한 환경에서 탄생하였다.

앙코르와트 유적군은 파괴의 흔적이 완연하다. 과거 도굴꾼들이 무차별적으로 유물들을 도굴해 엄청난 가격으로 팔았는데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도 자신이 도굴에 참여했다고 시인했을 정도이다.
앙코르와트 자체의 면적이 워낙 넓어 철저한 경비가 어렵기 때문에 현재도 많은 예술품이 도난되고 있다.
그래서 무려 7000여 점이 넘는 문화재를 박물관에 보관하면서 현장은 복제품으로 대체하고 있지만 잦은 내전으로 인해 문화재를 제대로 보관할 여력도 없는 상태이다.
현재 앙코르와트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과 동시에 위기에 처한 유적 목록에도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