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2천년 전 고대 도시로의 여행
2012년 4월, 남부 이태리 여행의 시작점, AD 79년 8월24일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2천년동안 화산재속에 뭍혀버렸던 비운의 도시 폼페이를 둘러보았습니다.
오랜세월 폼페이의 존재는 잊혀져 전설로만 남아있다가 1549년 수로 공사를 하던중 우연히 찾아지고 18세기에 들어 본격적 발굴이 진행된 후 현재는 전체 유적의 60%정도가 발굴 되어 있습니다.
폼페이는 대표적 로마 도시로서 헬레니즘 문화를 꽃 피웠으며 삶의 수준이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모습과 단지 도구의 차이만 있을 뿐 아주 흡사하다고 합니다.
도시의 구조는 바둑판식 배열의 완벽한 계획도시로서 대로 주변에는 주상복합단지들로 자리잡아 주로 1층은 상가였고, 2층은 가정집들로 쓰였다고 합니다. 도로의 중간중간에는 길을 건너는 건널목이 있었으며 사거리에는 지금의 도로와같이 사거리 네방향으로 건널목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향락 산업이 상당히 발달을 하였으며 섬유산업.해상무역등도 주요 산업으로서 고대 이탈리아 반도 로마 사회에서도 상당히 부유한 지역으로 평가됩니다.
폼페이, 이곳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 형성된 향락과 영화로움은 자연과 같은 초인적 힘 앞에서 결코 영원하지 못하며 한낮 일장춘몽일 수 있다는 교훈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습니다
폼페이 유적으로 들어서는 입구
저 언덕위로 올라서면 2천년전 고대 도시 폼페이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폼페이는 도로망이 잘 갖추어진 완벽한 계획도시였다
중안 신전앞 광장, 유럽의 도시는 예나 지금이나 신전 또는 교회앞 광장이 중심이 된다.
남겨진 기둥 뿌리만으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 화려했던 도시에서 폼페이 시민들은 행복했을까?
2천년 세월 전설로 잠들어 있던 이 곳에서 우리는 또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이 도시를 멸망시킨 베수비오 화산은 지금도 여전히 이 곳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겨우 수습된 유물들로 옛 영화를 짐작이나 할 뿐
엎드려 울고있는 듯 한 옛 폼페이 시민의 화석만이 그 시절을 기억하리라
인구 3만에 가까웠던 도시 곳곳에는 삶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잘 정비된 도로의 한 가운데 목이 좋은 곳에는 목욕탕이 있는데
공중 목욕탕, 냉탕, 온탕, 휴게실, 사물함 등 현대적 사우나와 별 다를바 없는 시설을 갖추었다.
공중 목욕탕 내부
호화롭게 꾸며진 탈의실 사물함
거리 곳곳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장식들이 놓여지고
대로에서 이어지는 소로에는 상점들이 가득하다
도심 중앙 광장
화려한 프라스코 기법의 바닥 그림이 있는 부잣집 입구, 아름다운 정원들로 꾸며진 이집은 지금도 대문을 걸어 잠궜다
도시 곳곳으로 전해지던 수도시설, 2천년전 폼페이 시민들은 인공 정수된 수도물을 마시고 살았다
지금은 화산재에 묻혀 그 모습을 짐작히기도 어려운 이 곳은 누구네 공간이었을까?
사람들이 모여든 이 집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중 하나라는 성매매 업소라고 한다.
성매매가 이루어진 침대, 방이 너무 좁다.
이 집 벽에는 온갖 체위의 춘화들로 장식되어 분위기를 살려주었다니...
성매매업소 주변의 벽에 새겨진 이 부조는 무엇일까? 대충봐도 거시기인 듯...
이 거리에도 많은 사연들이 있었을거라 믿으며 오늘도 발굴 조사 복원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비교적 온전한 모습의 원형 극장 거의 완벽한 반사 음향 설계로
지금도 무대 포인트에서 하는 말이 객석 뒷편까지 잘 전달되고 있다.
글라디에디터, 스파르타쿠스 검투사들의 처절한 싸움장 터
검투사들은 이겨야만 그 고달픈 삶이나마 지켜낼 수 있었는데.,
검투사들의 숙소를 복원해 놓았다
포로가 되어진 패전 국가의 장군들이 이 곳에서 짐승처럼 사육되었을 것을 짐작해 보았다.,
지하 무덤, 이렇게 파헤펴 놓은 것을 보니 죽음도 영원한 안식은 못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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