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 정도를 걸어야 극복할 수 있다
벌써 레임덕 걱정인가?
- 정도를 걸어야 극복할 수 있다 -
남 일 재
정치학 박사
경남정보대학교수
한국지역사회연구소장
신년벽두부터 정치권은 지금 난장판이 되고 있다. 사생결단의 이전투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야 영수회담의 결렬 이후 어느 정도 예견되는 일이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한 상황이 전개되리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국민들은 집권 세력이 연출하는 ‘의원 꿔주기’라는 전대미문의 해괴한 일에 뒤이은 ‘청와대 총재회담’의 결렬, 그리고 느닷없이 불거진 ‘안기부 자금의 총선지원’ 문제가 뒤죽박죽으로 엉켜 있는 상황을 보면서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먼저 '의원 꿔주고 받기'부터 살펴보자. 국민의 대표자이며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임대하는 것 자체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 전후 과정은 더욱 기가 막힌다. 꿔주고 받은 민주당이나 자민련의 지도부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해당 국회의원들이 자발적으로 '정국안정을 위한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이를 감행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정치판에서 언제부터 개별 국회의원이 정국안정을 위해 소속 당 지도부의 지시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한 일이 있었던가? 그것도 탈당하여 당적을 옮기는 문제를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다는 말인가? 정말 삼척동자가 들어도 웃을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그 살신성인이라는 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살신성인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국민을 너무 얕잡아 보았거나 집권여당이 너무 오만하다는 말 외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임대를 받은 자민련 내부에서조차 ‘부끄럽고 더러운 일’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급기야는 용기있게 문제를 지적한 부총재를 제명하는 사태까지 빚어내고 말았던 것이다.
「안기부 총선자금」사태는 또 어떻게 보아야 할까? 증거가 확실한 명백한 범죄행위라는 검찰의 발표와 이에 가세하여 연일 야권을 압박하는 민주당, 그리고 청와대의 태도를 왜 국민들은 냉소적으로 보는 것일까? 그것은 '정치적 힘 겨루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검찰과 집권 여당은 이 문제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음이 분명한데, 왜 하필 이 시점에 터뜨려서 정치적 혼란과 여야 정쟁을 가속시키는지 이해하기가 곤란할 뿐 아니라, 또 수사중인 사건을 두고 여당과 청와대가 가세하여 ‘이회창 총재의 사전인지설’, ‘97년 대선자금 관련설’까지 들추어내면서 지난 일을 끝없이 들추어내고 있는 것인 지, '정치적 힘 겨루기' 말고는 달리 해석할 수 없는 정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야당은 야당대로 소위‘ 20억 플러스라는 DJ비자금’전면수사를 들고 나오고, 전직 대통령인 YS까지 발끈하고 나서는 등 어지러운 정쟁이 가속화되고 있음이 이를 잘 말해준다.
항간에는 우리 정치의 영원한 걸림돌이자 청산대상인 ‘3김 정치’가 부활하고 있다는 말이 돌고있다. 그들 사이의 극한 감정 싸움에 여야는 물론 전 국민들이 볼모로 잡혀 있다는 뜻일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 새로운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고, 첨단 디지털 사회가 무서운 속도로 열리고 있는데, 우리네 정치 지도자들이 이처럼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구습을 되풀이한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너무도 어두워진다. 경제는 너무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엄청난 폭설로 뒤덮혀 한파 몰아치는 추운 겨울을 움추린 채 지내는 국민들을 정치권이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정치 9단이라는 김대중 대통령이 왜 이런 악수를 두었는지 참 알 길이 없다. 그 정도로 정국주도에 자신이 없는 것일까? 그렇게 해서라도 ‘세 불리기’를 해야하고 야당을 압박해야만 할 정도로 절박해진 것일까? 이런 소동과 정치권 전체에 대한 목조우기를 해야만 집권 후반기를 맞아 야기될 ‘레임덕현상’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오늘 아침 신문들은 'DJP 공조 완전 복원‘을 크게 보도하고 있다. 그 복원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 민생‘과 ’경제 살리기‘를 위한 정치적 결단인가? 아니면 ’레임덕 방지‘를 겨냥한 또 한번의 야합인가?
이미 국민들은 이 정부의 지도력에 실망하고 있으며, 민심은 무섭게 냉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도를 벗어난 꼼수로는 결코 국민의 지지를 얻어낼 수 없을 뿐 아니라, ‘레임덕’을 가속화시킬 뿐이다. 정국 안정과 민심의 수습은 결코 야당의 몫이 아니다. 오직 집권 여당과 김대중 대통령은 정도(正道)를 걷는 대승적 결단만이 이 정치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이 너희에게 행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신명기5 : 32-33)>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한 민족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새겨야 될 말씀인 것이다. 이는 지도자는 언제나 바른 길을 가라는 지엄한 명령이다. 얕은 꼼수를 쓰지 말라는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복음 12 : 24)>고 하였다. 정치 지도자는 밀알이 되어야 한다.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업적이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거둘 수 있고, 그 이름이 역사에 기록되는 것이다. 그 것이 바로 정도이다. 오늘 살기 위해서 정도를 버리는 지도자는 이미 지도자가 아니라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빛과 소금 2001.02.01 193호 정치바로보기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