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내 정풍운동, 정치권 전반의 개혁 기회로 삼아야 한다.
여당내 정풍운동, 정치권 전반의 개혁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남일재 (정치학박사, 경남정보대학 교수)
“새는 좌익 우익 두 개의 날개로 난다”는 어느 교수의 저술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역사는 진보와 보수의 합작이라는 말일 것이다. 사실 어떤 시대, 어떤 집단에서도 이 명제는 진리이다.
보수는 지키자는 것이며 진보는 바꾸자는 것이다. 지키자는 것은 ‘지킬 것이 있는 자’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별로 ‘지킬 것이 없는 자’들로서는 공허한 말일뿐이다. 그러나 바꾸자는 말은 다르다. ‘지킬 것이 있는 자’들에게 바꾸자는 말은 괜히 건드려서 화근만 만들 뿐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보장받을 개연성이 적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대로 그냥 내버려둬도 그들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으니 굳이 바꿀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킬 것이 없는 자’들로서는 한번 바꾸어 보는 것이 손해볼 것 없는 장사가 된다. 거의 가진 것이 없는 그들로서는 어떤 것을 건드려서라도 국면전환을 하고 싶고, 잘되면 보다 나은 미래를 얻게되며, 못되어도 본전은 되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인간이 만든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 그대로 적용된다. 특히 사회의 기득권을 일시에 쥐게되는 권력투쟁의 장에서 이 명제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권력을 쥔 자들은 현상을 유지해야 한다. 권력을 갖지 못한 자들은 현상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유로 제도와 시스템, 인적구성과 의식의 개혁을 부르짖게 된다. 현상을 깨어야만 권력을 쥘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근세 서양에서 왕당파와 공화파가 그랬고, 자번주의 경제체제에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그랬으며, 우리 역사의 장에서 훈구공신파와 신진사림파는 그래서 내내 대립을 해 온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집권 여당인 새천년민주당내에서 불고 있는 정풍운동 역시 예외일 수가 없다. 법무부 장관 인사 파문을 계기로 소장파 의원들이 들고 나온 `당․정 수뇌부 쇄신론'은 그런 의미에서 당권을 쥔 자들에 대한 도전이 분명하다. 소장파 의원들이 요구하는 당 정체성 확립, 민생 및 개혁입법 조속 처리, 국정운영 시스템 혁신은 사실 당내 기득권층인 당지도부로서는 거부하기 어려운 명분을 가지고 있다. 그 동안 보여주었던 몇 번의 정책실패와 민심이반 현상만으로도 현 집권층에 대한 근본적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가 운영 전반에 걸친 큰 영향을 가지며 또 국민의 여론과 민생에 바로 연결되는 힘이 내재된 집권당의 개혁을 소장파들의 의견대로 수용하면 당내 질서는 거의 붕괴되고, 청와대- 당지도부- 동교동파로 이어지는 당권라인을 전면적으로 손질하지 않을 수 없게되기 때문에 선뜻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입장이다.
이미 시중에는 이 집권당내의 정풍운동과 그 여파를 모 방송국의 드라마에서 보여주고 있는 조선조 중종시대 훈구공신들과 신진사림파간의 권력투쟁의 장면과 흡사하다는 말이 떠돌고 있으며, 정풍운동을 주도하는 정동영 최고위원을 조광조에 대비하는 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이들의 대립을 지켜보면서 난감해하는 중종의 고뇌어린 모습 역시 어느 쪽이든 대놓고 손을 들어주기 어려운 청와대와 대통령의 모습으로 투영되기도 한다.
이 여당내 정풍운동을 분석하고자 할 때 우리는 모두에 언급한 보수와 진보의 갈등의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처한 시점이 ‘지켜야 할’ 시점인지, ‘바꾸어야 할’ 시점인지,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하는 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은 명백히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후반기이며, 이는 곧 새로움과 변화를 준비해야할 시점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새천년민주당이 정권재창출을 하든, 정권이 야당인 한나라당쪽으로 이동하게되든 이미 5년 남짓 집권해온 현 집권층의 시스템과 인적구성은 바뀌어야만 할 시점인 것이다. 즉 집권층내에서 이미 ‘지키고자 하는 세력’과 ‘바꾸어 새롭게 하자는 세력’간의 갈등은 시작될 수 밖에 없으며 또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바, 그 무게 중심은 상당한 정도로 후자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번 여당내 소장파에 의한 정풍운동과 인사쇄신 요구의 목소리는 시대적 당위성을 지니는 것이 된다. 비록 소장파 의원들의 요구가 향후 권력의 향방을 염두에 둔 의도적이며 권력투쟁적 요소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들의 목소리에는 최우선 개혁의 대상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기성정치권 전반에 대한 새바람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힘이 실려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여당은 급히 ‘워크샆’을 개최하여 분임조 토론을 하는 등 이 바람을 잠재우기 위한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그러한 미봉적 급조된 토론의 장만으로 대세를 막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당내 소장파들의 움직임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발전할 것인가는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그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야당인 한나라당도 함께 긴장하고 있으며, 당내 소장파 의원들의 움직임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을 볼 수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소장파들의 도전이 거세어질 경우 그것이 그 동안 몇번이나 수면위로 모습을 나타내던 ‘정치권 새판짜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현재의 여야 지도부를 더욱 답답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국민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지켜보아야 할 것인가? 물론 현집권층을 포함한 정치권 전체에 대하여 민심은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대다수의 국민들은 보다 새로운 인물과 시스템에 의한 참신한 정치력을 기대하고 있다. 많은 언론의 독자 여론층에 표출되고 있는 일반 시민의 목소리 역시 그러한 기대감으로 넘쳐나고 있다.
국민들은 이 기회가 정치권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이제 공은 집권 공신들을 포함한 당 지도부에게 넘어갔다. 그들이 어떻게 대처하는 가에 따라 이 정부와 집권 여당의 향후 진로에 큰 흐름이 바뀔 수도 있다. 신중하고도 사려 깊게 결정해야할 시점이다.
결국 현 집권여당의 선택은 매우 제한적이다. 소장파의원들의 정풍요구가 시대적 명분적 당위성을 내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젋은 것들이 감히…?하는 식의 발상으로 눌러서 될 일은 아닌 것이다. 차제에 이번의 정풍운동이 찻잔 속 태풍이 아닌 진정한 새바람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김대중 대통령과 집권수뇌부들은 전향적 ‘국정쇄신’의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집권 후반기 레임덕을 방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위 ‘정권재창출’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이번 소장파의원들의 정풍운동은 여당내의 갑갑한 비민주적 구조에 대한 강한 견제이며 도전일 뿐 아니라, 의약분업 강행과 건강보험재정파탄, 공교육실패, 법무부장관 인사 실패 등 일련의 정책실패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대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점을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적어도 조선조 중종처럼 훈구세력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개혁을 위한 정열이 넘치는 신진사림을 제거하는 우를 범하지는 아니해야 하는 것이다.
2000년전 예수님 역시 기득권에 안주하여 민중 위에 부소불위로 군림하던 당시 종교지도자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으려 노력한 진보적 소장파였음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이 땅의 정치권에 계속 넘쳐나길 기도한다.
((빛과 소금 2001.07.01 제203호 정치바로보기 게재)